[목요풍류 4회] 소나기의 감성에 흠뻑 젖다

2012. 3. 30. 16:22풍류방이야기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초시네 증손자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 가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 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소년은 개울둑에 앉아 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요행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소녀가 길을 비켜 주었다.
다음날은 좀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이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 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 올린 팔과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물속을 빤히 들여다본다.
얼굴이라도 비추어 보는 것이리라. 갑자기 물을 움켜 낸다. 고기 새끼라도 지나가는 듯.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을 움켜낸다.
그러나 번번히 허탕이나 그래도 재미있는 양, 자꾸 물을 움킨다.
어제마냥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자리를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이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훌쩍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과 소녀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이 단순한 이야기에 무엇이 담겨있는걸까요? 매번 보아도 볼때마다 내내 여운이 남아 눈시울이 붉어지고야마는 <소나기>를 낭독국악극으로 새롭게 만나보았습니다.

 

공연 시작 전에 영송당 조순자 관장님의 인사말씀이 있으셨어요. <열린무대 젊은국악>은 오롯이 정음 연주단원들이 기획하고 준비하는 무대이기도 하고, 또 그간 전수관 운영을 위한 업무들 때문에 바쁘셨던 탓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올해부터 전환된 유료공연에 기꺼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고 죄송스럽지만, 더 좋은 공연을 위해 계속 '죄송하겠다'고 전하셨습니다. ^^

 

이번 공연에는 러시아에서 오신 분도 계셨고요. 아이들, 청소년 관객도 여럿 와주어서 자리를 빛내 주었습니다. '낭독국악극'이라는 지역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공연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겠지만, 역시 원작 <소나기>의 힘이겠지요?

 

 

공연이 시작되고 주위가 삽시간에 어두워지자, 낭독자가 <소나기>를 읽습니다. 극단 미소의 단원인 배우 박계랜 씨가 실감나게 낭송해 주었어요. 모두들 낭독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소년과 소녀의 마음이 되었습니다.

 

 

낭송 중간 중간 이어지는 국악연주. 여기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더해져 <소나기>의 향토적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낭송+자연의 소리+국악 (이 모든 게 자연의 소리이지요. 사람이 내는 소리도 자연, 자연물로 만든 악기 국악이 내는 소리도 당연히 자연의 소리니까요.)이 함께 어우러져 들려주는 소리, 궁금하시죠? 

무대세트에도 주목해 주세요. 사진에서 보이는 돌덩이들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것입니다. 돌덩이들이 있는 자리가 바로 소녀가 있던 징검다리이지요.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갑니다.
소년은 소녀에게 꽃을 꺾어주고 소녀는 보라색 도라지꽃을 보고 생전 처음 본 꽃이라며 기뻐하고요.
이때 쏴아~ 내리는 소나기... 이어 25현 가야금독주 <도라지꽃>과 <호랑이 장가 가는 날>이 나옵니다. 

 

<도라지꽃>을 들으면 도라지꽃, 마타리꽃... 을 보고 즐거워하는 소녀의 모습이 떠올려집니다.

 

묵직하고 신비로운 곡조를 띤 <호랑이 장가 가는 날>은 쏟아지는 빗소리와 함께 소녀의 갑작스러운 운명을 예고합니다.

 

 

소녀로 분한 듯, 조수연가인이 애절한 음색으로 <오래된 정원>을 부릅니다. 공연 중 유일한 노래인데, 곡이 꽤 길면서 또 듣고 있으면 소녀가 죽다 살아난 것만 같아요. ㅡ.ㅡ;; 파리한 모습의 서울 소녀를 연기하기 위해 조 가인은 두 끼를 굶었습니다....

 

노랫말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서비스

 

<오래된 정원>

어느 돌담을 스쳐온 바람이런가

담장이 넝쿨 흔들던 바람아

세월 묵어 이끼 낀 석등 위에

깊은 산골 산새라도 쉬었다가나

 

하얀꽃 수연이 핀 연못아래

달빛만이 저홀로 걷는구나

 

어느 산자락을 스쳐온 바람이런가

앞마당 싸릿문에 속삭이던 바람아

비록 옛주인은 떠나갔어도

바람에 실려 반가운 소식이 올까나

 

 

없으면 서운한 느닷없는 행복 추첨!

 

공연을 준비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처음 시도해 보는 낭독국악극이니 많이들 와달라고 하기도 하고, 예매를 독려하기도 했지만 막상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연주자도, 저도 아주 행복했습니다.  공연에 대한 평도 아주 좋아서 좀 더 다듬은 후에 재공연을 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고요.

 

준비기간도 짧아 여러모로 미흡한 점이 많았을테지만 즐겁게 동참해 주신 관객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혹 못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재공연을 기다려주세요!

 

공연소감

· 원래 알던 소설을 이렇게 접하니 새롭고 재밌어요! 더 많은 공연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김해 조은영

· 좋았습니다. - 김가람

· 마음을 가라 앉히면서 편안한 느낌과 옛날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어요. - 창원 손희록

· 어렵지 않게 다가가는 공연 좋아요. - 부산 최동민

· 익숙한 멜로디와 친숙한 소재로 편안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 창원 라소영

 

 

 

열린무대 젊은국악 <세상의 모든 소리>

낭독국악극 소 나 기


일시 : 2012년 3월 29일 목요일 오후 7:30
장소 : 가곡전수관 영송헌

 

출연자
낭   송_ 박계랜 (극단 미소 단원)
노   래_ 조수연 (가곡 이수자•국악연주단 정음 단원)
피   리_ 김정집 (국악연주단 정음 사범)
가야금_ 서은주 (국악연주단 정음 단원)
             송정아 (국악연주단 정음 단원)
거문고_ 신근영 (국악연주단 정음 단원)
대   금_ 정나례 (국악연주단 정음 단원)
해   금_ 김지희 (국악연주단 정음 단원)
타   악_ 정동주 (국악연주단 정음 단원)
특수악기_ 박소연 (국악연주단 정음 단원)

 

제작진
제  작_ 조순자     연  출_ 신용호     기  획_ 신근영     조  명_ 이상현
음  향_ 조민수     그  림_ 김수경     영  상_ 김동영     소  품_ 주동섭
각  색_ 손상민     원  작_ 황순원 

 

관람료_ 전석 5000원
40% 할인 _ 18세 이하 청소년, 60세 이상 노약자, 장애인
20% 할인_ (사)아름다운우리가곡 회원

문의) 행정실 055-221-0109

★ 유료공연을 통해 얻어지는 입장권 수익은 전액 더 나은 공연을 위한 인건비, 제작비, 운영비 등과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국악공연에 쓰입니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은 우리 겨레의 소중한 자산인 가곡을 전승·보전하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공연·교육 시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