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탄] <버들은> 1

2009. 4. 22. 15:28왕초보 노래배우기

정말 오랜만에 글을 올린다.
그동안 뜸했던 이야기는 그다지 이야기꺼리도 되지 못하고,
지루할 것도 같아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그래도 좀 서운한 듯하여
마음은 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진심을
마치 흔한 유행가 가사 같은 핑계 한 줄로 남겨본다.

이전의 글들을 잠깐 훑어보니 가곡을 잘 알고 싶었던
당시의 마음들이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졌다.
사실 왕초보가 가곡을 배우기에는 예전만큼 좋은 여건이 아니다.
영송당 선생님께서 전수관이 있는 마산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엮어갈 이야기들은
예전에 영송당 선생님께 받았던 수업 정경 그리기...정도가 될 것도 같다.
노래 부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적잖이 부족할 듯하다.
다만 가곡을 배우면서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흥미롭고 감동적이었던 이야기
-물론 가곡에 관련된-들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버들은 실이 되고’

영송당 선생님은 수업의 첫 곡으로 ‘버들은 실이 되고’를 가르쳐주신다.

"이 곡의 첫 부분인 '버들은 실이 되고' 부분을 할 텐데
오늘은 꼭 여기까지 해야 해요, 안 그러면 오늘 안보내줄 거에요"

영송당 선생님께 가곡을 배우기 시작한지 두 번째 수업 때,
선생님께서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게 말씀하셨다.

수업은 대개 이런 순으로 이뤄진다.
우선 선생님의 노래를 먼저 한 번 듣고,
선생님께서 다시 한 번 노래를 부르시면
선생님의 노랫소리를 온 정신을 집중해서,
마치 눈앞에 소리의 흐름이 보이는 것처럼,
귀로 듣고, 눈으로 쫓으며 조심스레 따라 부른다.

따라 부르는 데에도 순서가 있는데
처음에는 가사로, 즉 이렇게,
버들으으으으으으를 으-------으은, 으----

그 다음엔 박자로, 즉 버들은 실이 되고, 라는 가사 부분을
‘하나아 두우우울 셋....’ 하면서 박자로 노래를 따라한다.

그리고 율명으로 따라 부른다.
‘임이---- 이이이임 태--...’

가곡이라고 하면 서양 가곡만 알고 있고 서양 악보만 봐왔던 당시에
우리나라 가곡의 악보는 무척 낯선 것이었다.
한참 노래를 부르고나서 목을 축이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물 한 잔 마시고 눈에 익지 않은 악보를 살펴보다가
악보에 써있는 글자 ‘數’을 뭐라고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서 선생님께 여쭈었다.


"이수대엽이 아니라 이삭대엽이다!"

“‘이수’라는 말은 국립국악원 측에서 ‘이수’라고 해요.
즉 초수, 이수, 삼수, 편수라는 말을 써요. 나도 국악원 계열이라 계속 그렇게 썼는데,
학문하는 분들 중에 이 표현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국립국악원에서는 이렇게 순서라는 의미에서 이수, 초수라고 불렀고
음악인들 역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중략)
“‘삭’이라는 말은 ‘초’라는 말에서 문제가 생겨요.
‘초’라는 것이 ‘처음’을 의미하니까,
‘초삭’이라고 하면 노래 부르는 순서가 처음이라는 것이고,
‘이삭’이라고 하면 노래 부르는 순서가 두 번째라는 것을 의미하죠.
즉 삭대엽 계열의 것을 남자가 처음 부른다는 의미니까
초수 보다는 초삭이 맞는 표현이지요.“


그리고 ‘삭’을 순서의 의미로 생각할 때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은 또 ‘편수’였다고 선생님은 말씀 하신다.
‘數’라는 글자를 순서로 이해할 때
편수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라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시던 중 선생님께선 편수가 아닌 편삭이라고 해야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셨다고 한다.

우리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거창한 몸짓을 보여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이란,
그 문화를 직접 향유했던 조상들과
시대를 초월하여 소통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소통의 계기가 온 몸을 관통할 정도의
강렬한 감동에서 시작될 수도 있지만,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사실 이수와 이삭의 차이점이라든가,
어느 것이 옳은 표현인가 등은
나와 같은 범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은 가곡을 기록, 보존하고,
전수하는 입장의 관심사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수’라고 하는 음악계와
‘이삭’이라고 하는 문학계 사이에서
어느 것이 알맞은 표현인가를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이삭이다!, 라고 깨달게 되었던 그 순간은
영송당 선생님께서 시대를 초월하여
그 시대와 소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는
가곡이 우리 마음속에서 꿈틀, 하며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즉 가곡이라는 것을 윗대에서, 그 윗대의 윗대에서 내려오는 대로
수동적로 받아들이고 기억하는데 그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옛날 가곡을 향유했던 이들과 시대를 초월하여
소통할 수 있는 매개로 살아나는 것이다.



참고:
조선조 광해군 2년(1610) 악사 양덕수가 편찬한 『양금신보(洋琴新譜)』에 의하면 가곡(歌曲)은 고려 가요인 진작(眞勺·鄭瓜亭曲)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조선조 초기에는 현재의 삭대엽(數大葉)외에 중대엽(中大葉)과 만대엽(慢大葉)이 더 있었는데, 이들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의 만·중·삭은 곡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로, 만(慢)은 제일 느린 것, 중(中)은 중간 빠르기, 삭(數)은 가장 빠른 곡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들 중 만대엽과 중대엽은 사라지고 삭대엽만 남게 되는데 17 세기 후반부터 중대엽과 같이 1, 2, 3, 4의 파생곡을 만들어 냈고 18 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중대엽을 제치고 크게 성행하였으며, 19 세기에는 전에 없던 농·락·편의 새로운 파생곡의 형태까지 만들어 내어 오늘날의 가곡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