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7. 14:32ㆍ손간의 미주알고주알
★ 祝賀 ★
前 가곡전수관 간사 손상민, 2016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축하해주세요!!
가곡전수관의 행정실 간사로 근무하시던 다재다능한 미녀 손상민 前간사님께서 201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서 당선되었다는 소식!!
[2016 신춘문예-희곡 당선 소감] "의심하지 않고 작가의 길 가겠다"
'생각지도 못한 전화를 받았다'거나 '기대하지 않았다'는 당선 소감을 의심했습니다. 응모를 했다면 응당 연말까지 내내 전화기만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임신해야지 마음먹고 기다리다 지쳐 잊어버리고 살 때쯤 아이가 찾아왔던 것처럼, 저 역시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당선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때야만이 그것을 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연극을 공부한 적도 해 본 적도 없는 제게 처음 대본을 맡겨주신 가곡전수관 조순자 관장님과 극단 마산 최성봉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연극과의 인연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엄마바라기 윤영이와 윤영이 비위를 모두 맞춰주며 돌봐준 동생 정란이, 그리고 엄마로서 부족하기만한 저를 차고 넘치게 채워준 15년 지기 동지 최창기 씨. 함께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등단은 오랜 꿈이었지만 막상 이 자리에 서고 보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타는 목마름이 아니었다면 육아전쟁 속에서 글쓰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많은 예비 작가들을 응원합니다.
이제야 글 쓰는 일에 작은 명분을 얻었습니다. 의심하지 않고 주어진 길을 가겠습니다. 제게 조금이나마 재주가 있다면 모두 이 분들 덕분입니다. 타고난 이야기꾼 엄마, 화가를 꿈꿨던 아빠.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2016 신춘문예-희곡 심사평] "아름답지 않은 현실 속 삶의 긍정 보여 줘"
올해 희곡 부문 응모작은 실제 삶의 장과 정면승부를 거는 일상극이 눈에 띄었다.
'오래도록, 고맙도록'은 범속한 가족사의 이면에 깔리는 심리적 공간을 디테일한 입담으로 걸러내는 수작이다.
다만, 일상을 뛰어넘는 삶의 비전이 분명하게 제시되지는 못했다.
'맨홀 아래'의 상징성은 절묘하지만, 극적 반전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시린 세계' 또한 가혹한 현실을 견디는 언어의 힘이 느껴지는 수작이다.
'볼레로'는 다인종사회가 형성되고 있는 지금 이곳의 삶을 적확하게 짚어낸 수작이다.
알리바마 이야기를 극중극으로 개입시킨 구성력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척박한 삶을 극복해내려는 의지가 분명하다.
'잃어버린 계절'은 범속한 아내의 범속함을 뛰어넘는 삶의 낙천성이 관객에게 '그래도 이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감동을 분명하게 던질 수 있는 수작이다.
시나리오 응모작 대부분이 스토리에 의존하는 장편영화 대본이어서 당선작을 찾기 어려웠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은 그대로 좋은 영화 대본이 틀림없지만, 이 긴 영화적 서사를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가두기에는 어쩐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당선작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현실 속에서 아름다운 삶의 긍정을 보여준 '잃어버린 계절'을 선택한다. 가혹한 현실을 풍요로운 웃음으로 꽃피우는 무대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윤택-
[2016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제목: 잃어버린 계절
등장인물_ 남편, 아내, 시어머니
늦가을 오후.
낡은 주택 2층의 거실 중앙이 무대.
객석에서 마주보이는 창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지의 윗부분이 보인다.
간간이 바람이 불어 은행나무 잎이 하나 둘 땅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거실에는 3인용 소파, 낮은 좌식 테이블과 방석이 놓여있다.
무대 우측에는 좁은 부엌의 일부가 보이고 창 옆에는 화장실로 가는 문이 있다.
낡은 것과 새 것이 섞이고 육중한 것과 가벼운 것이 섞여있는 부조화한 인테리어. 신문, 뜨개질거리, 바느질 뭉치가 여기 저기 나뒹구는 어수선한 분위기다.
거실 바닥에서 다소 육중한 체구의 여자가 누워 두 손과 두 발을 붙인 채 쭉 뻗었다가 접는 운동(합장합족 운동)을 과장되게 열중해서 하고 있다.
시멘트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 여자의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손에는 신문과 우편물을 들고 있다.
남편_ 나 왔어.
아내_ (운동을 계속하며) 응.
남편_ 뭐하는 거야?
아내_ 자궁의 기운을 강화하고 후 후 역아를 방지하는 운동이야 후 후. 100번씩 후 해야 해.
남편_ 이상한데.
아내_ 붕어운동이라고. 후 후 이래 뵈도 효과가 크데 후. 밥은?
남편_ (소파에 앉으며) 간단하게. 당신은?
아내_ 나도. 별 일 후 없었고?
남편_ (우편물 들여다보며) 응. 그렇지 뭐.
아내_ 후~ 오늘은 이 정도만.
남편_ 100번 다 했어?
아내_ 이미 몇 번 했는지 까먹었어. 숨이 가쁘니까. 그 정도 한 걸로 치고. 여자, 스트레칭을 하더니 다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서 두 팔과 다리를 위로 치켜들고 힘껏 흔든다.
남편_ 뭐야. 아직도 남았어?
아내_ 이건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운동. 자기도 시간 날 때 해봐. 몸에 좋데. 부종을 예방해 주는 거야.
남편_ 보기엔 좀 거시기하네.
아내_ 동물들도 아플 땐 이렇게 해. 개도 아프면 외진 데 가서 이러고 있다던데.
남편_ 설마. (우편물을 보다가) 어? 이거 뭐야?
아내_ 왜? 뭐?
남편_ 카드값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어?
여자 벌떡 일어나 남자의 손에서 우편물을 낚아챈다.
남편_ 어디 봐. 어디 다 쓴 거야?
아내_ 별 거 아냐.
남편_ 별 거 아니긴. 22만원이나 나왔잖아. 22만원이 애 이름이야?
아내_ (감추며) 세탁기 이름. 필요해서.
남편_ 설마 멀쩡한 세탁기를 놔두고 또 산 건 아니지?
아내_ 자기야. 그러지 말고 여기 좀 앉아봐. 내가 다 설명할게. 엊그제 통신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우리 지금 쓰는 통신사 약정기간이 끝났데. 통신사를 바꾸면 현금 22만원을 준다지 뭐야?
남편_ 그래서 22만원을 지르셨다?
아내_ 그 전화를 받고 있는데 글쎄 홈쇼핑에서 애기 옷 세탁기를 엄청 할인하는 거야. 자기도 그때 백화점에서 봤잖아. 그게 시중가는 엄청 비싸거든. 금액도 딱 22만원.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하지 않아? 이건 내가 결정한 게 아니라 어떤 큰 힘이 나를….
남편_ (말 자르며) 그래도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니잖아.
아내_ 아냐. 이게 애기 옷만 세탁하냐, 그랬으면 사지도 않았어. 이걸로 우리 속옷도 세탁할 수 있어. 삶은 것처럼 깨끗해진다더라고. 댓글 봤는데 와, 자기도 봐야해. 반응이 장난 아니야. 왜 이런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않고 원시인처럼 살고 있나 싶었다니까.
남편_ 그냥 세탁기에 넣으면 되잖아.
아내_ 자기가 몰라서 그래. 속옷은 일일이 손빨래를 해야 한다고. 자주 삶아야 되고. 그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알아?
남편_ 이제 홈쇼핑 채널은 그만 좀 봐. 쓰지도 않는 전기오븐기에, 녹즙기 또 뭐야. 얼마 전에 산 운동기구까지,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우리 사정도 예전 같진 않잖아.
아내_ 그게 당신이 계속 없었으니 의논할 수가 있어야지. 살림하다 보면 필요한 것도 많고… 참. 오늘 밑에 주인집 새로 이사 와서 시루떡 주고 간 게 있는데 먹을래?
남편_ 이사? 오늘이었나.
아내_ (탁자 위에 신문으로 덮어둔 시루떡을 꺼내 손으로 찢으며 고물을 쪽쪽 빤다)
남편_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내_ 왜? 안 먹어? 자~ 아 해.
남편_ 젓가락 갖다 줘.
아내_ 이건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지. 아, 해. 맛있다. 그치?
남편_ 응. 오랜만이네. 시루떡.
아내_ 그렇지? 이사떡 돌리는 거 어렸을 때 보고 처음이야. 우리처럼 젊은 부부던데. 둘이서 이 큰 집을 어떻게 샀을까. 분명 부모 잘 만난 덕이겠지?
남편_ 별 다른 말은 없고?
아내_ 그냥.
남편_ 그냥 뭐?
아내_ 전주인이 시세에 비해 월세를 낮게 받았다네.
남편_ 낡아빠진 2층 주택인데 월세를 또 올리겠다고?
아내_ 아니. 아니. 그냥 지나가는 말로. 월세 올린다는 얘긴 안했어. 인상이 참 좋아 보이던데.
남편_ 그게 그거지 뭐야.
아내_ 왜 더 안 먹어? 몇 개 더 먹어보지?
남편_ 됐어. 별 맛도 없는 떡을 갖다 줬네. 물 좀 갖다 줘.
아내_ 응 잠깐만.
여자, 재빨리 일어나 부엌에서 물 한 컵을 받아들고 나온다.
사이. 남자,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을 향해 걸어간다.
아내_ 또 나가려구?
남편_ (핸드폰을 꺼내 흔든다) 전화가 와서. 통화 좀 하고.
아내_ 자. 물이라도 마시고 가.
남편_ 네. 접니다.
남자가 나간 후 혼자 남겨진 여자. 물컵을 탁자 위에 놓아두고 말없이 떡을 먹는다. 떡을 먹다가 얹히는지 기침을 하며 물을 마시는 여자. 물을 마시다 말고 창밖의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배를 어루만진다.
암전.
어두운 무대.
천장에 실을 단 커다란 잉어 모양의 등만이 불을 밝히고 있다. 소파에 누운 여자가 잉어를 잡으려 두 팔을 휘젓지만 헛수고일 뿐이다. 잉어는 점점 위로 올라가고 여자가 일어나 손을 뻗어본다. 사라져가는 잉어를 멍하니 바라보는 여자.
암전.
사이.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불이 환하게 켜진 거실 소파에 손에 리모컨을 움켜쥔 채 여자가 모로 누워 자고 있다. 지지직거리는 TV 소리가 들린다. 조심스레 다가간 남자가 여자의 손에서 리모컨을 빼려 하지만 여자는 리모컨을 놓지 않는다. 짧은 실갱이 끝에 리모컨을 빼앗은 남자가 TV 전원을 끄고 동시에 잠이 깬 여자.
아내_ 끄지 마. 보고 있어.
남편_ 입에 침이나 닦아.
아내_ 몇 시야, 지금?
남편_ 1시 조금 넘었어. 방에 들어가서 자. 얼른.
아내_ 술 마셨어?
남편_ 소주 한 잔.
아내_ 누구랑?
남편_ 김씨 아저씨.
아내_ 그치랑 마셨는데 잘이나 소주 한 잔이겠다.
남편_ 먼저 자라고 문자 보냈잖아. 방에서 자지 왜 만날 소파에서 자냐?
아내_ (하품) 자기는 뭘 자. TV 보고 있었어.
남편_ 아~ 정규방송 끝나고 지지거리는 화면 보셨어요? TV 켜놓고 잤으면서 끄려면 꼭 본다고 끄지 말래. 너 이럴 땐 우리 엄마랑 아주 똑같아.
아내_ 그래도 내 말동무 해주는 건 TV밖에 없다. 뭐. 자기 보다 낫다고. 그나저나 기분 좋은 꿈 꾸고 있었는데.
남편_ 들어가 자.
아내_ 무슨 꿈인지 묻지도 않네.
남편_ 들으나 마나 개꿈이야.
아내_ 들어봐. 내가 커다란 잉어를 잡은 꿈이야.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축하한다고 얘기해 줬어. 잉어가 엄청나게 크고 어찌나 팔딱거리는지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근데 그 중요한 순간에 잠 이 확 깨버렸다니까.
남편_ 리모컨이었어.
아내_ 응?
남편_ 당신이 잡으려던 거 리모컨이었다고.
아내_ 꿈에선 잉어였어. 내 다리통보다 큰 잉어. 잉어꿈은 아들태몽인데. 우리 나무 태몽을 지금 꾼 건가?
남편_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자!
아내_ 갑자기 왜 큰 소리야? 잠 다 깨게.
남편_ 늦었으니까 자라고 그만.
방으로 들어가려는 남자를 붙잡는 여자.
아내_ 자기, 왜 그래? 며칠 만에 집에 와서는 들어오자마자 또 나가버리고. 나는 자기 기다리다가 잠든 건데... 새벽에 들어와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남편_ 졸려서 그래. 내일 얘기하고 들어가서 자자.
아내_ 꼭 자기가 불리하면 다음에 얘기하자 그러지.
남편_ (눈을 감기며) 자, 잠이 온다, 온다, 그렇지 잠이 온다
….
아내_ (손을 치우며) 됐어. 안 와. 잠이 안 와.
남편_ 좋아. 그럼 나 먼저 잔다.
아내_ 가지마. 나 아직 잘 기분 아냐.
남편_ 날 더러 어쩌라고.
아내_ 옆에 있어.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되니까 옆에만 있어. 잠이 올 때까지.
남자, 여자 옆에 앉아 소파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는다. 여자는 남자의 눈 감은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혼잣말을 한다.
아내_ 자기야, 우리 나무 태어나면 이름을 뭘로 할까? 그것보다 도대체 어떤 얼굴일까? 진짜 신기하겠지? 가끔 이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전에 TV에서 어떤 사람이 강의하는 걸 들었는데 아이는 엄마 무의식의 산물이래. 늘 내 안에 있으면서 내 모든 생각, 행동을 함께 하니까. 정말 그런 것도 같아. 자기야. 나는 크리스마스 때도 교회 한 번 가본 적 없었는데, 세상에 신이 어딨어? 그랬거든. 근데 요즘엔 우리 나무가 나의 신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봤다. 내 모든 걸 보고 있으니까, 그래서 조심하게 되고 잘 해야겠다 다짐하고…. 듣고 있어? (남자를 흔든다) 이 안에 신이 있다고.
남편_ (잠깐 눈을 떴다 다시 눈을 감으며) 어.
아내_ 그러니까 우리 나무가 우리의 신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자기야, 자? 나 있잖아. (속삭이며) 요즘에 딴 남자랑 자는 꿈을 꿔. 깨고 나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그 남자와 자면서 진짜 좋았다. 아니. 오해는 하지마. 자기
보다 좋았다는 게 아니라 진짜인 것처럼 좋았다고. 꿈이니까 뭐라고 안 할거지? 벌써 서너 번 그랬나. 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근데 우리 나무가 내 꿈까지 보는 건 아니겠지? 그럼 곤란한데. 나무는 이 안에서 뭘 할까? 열 달 동안 기억하지도 못할 꿈을 꾸고 있는 걸까? ... 자기야, 자?
남편_ ….
아내_ 방에 가서 자야지. 자, 들어가자.
남편_ 어? 어.
남자를 부축하는 여자와 남자가 나란히 방으로 들어간다. 남자를 방에 눕히고 여자가 다시 거실로 나와 거실을 한 번 쓱 돌아본 후 불을 끈다.
암전.
아침. 햇살이 방안을 채운다. 여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뇌호흡 명상 CD가 플레이 중이다.
CD 환한 빛이 머리끝 백회로부터 들어와 가슴과 태아가 있는 뱃속, 팔과 다리, 온몸을 감싼다고 상상합니다. 그리고 어두웠던 그간의 마음들을 모두 날려 버린다고 상상하십시오. "이제부터 나의 영혼을 성장시킬 새로운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며 아기와 나는 잘 해낼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사랑의 빛이 몸 구석구석을 환하게 쓰다듬습니다.
아내 우리 아기와 나는 잘 해낼 것입니다.
남자가 기지개를 켜며 방에서 나온다. 여자를 슬쩍 보더니 화장실로 향한다.
CD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눈을 뜹니다.
아내_ 서서 누지 마!
변기물 내리는 소리. 남자가 화장실에서 나와 부엌으로 간다. 여자가 명상을 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어본다.
아내_ 이거 봐. 이거 봐.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서서 누지 말랬지? 앉아서 누라고. 앉아서!
남편_ (부엌으로 가면서) 알았어. 알았어.
아내_ 만날 알았다고 말만 하고! 서서 누면 2천800방울의 오줌이 튄다고. 사방으로. 그럼 냄새나지, 냄새만 나면 괜찮게? 그 주변이 완전 오염된다고. 지금이야 우리 둘이니까 괜찮다고 쳐. 나무가 태어나면? 나무 태어나면 그땐 더러워서 같이 못살아.
남편_ (물을 따라 마시며) 세 봤어?
아내_ 뭐?
남편_ 세 봤냐고? 2천800방울.
아내_ 몰라. 전에 신문에서 봤어. 사람에 따라 그보다 많을지도 모르지. 어제 술 마시고 들어왔으니까 오늘 자기는 한 3천500방울 튀었을지 몰라.
남편_ 그런 거 다 뻥튀기 된 거야. 믿지 마.
아내_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이야.
남편_ 근거 좋아하시네. 우리 파업할 때 신문에서 뭐라고 한 줄 알아? 하루 파업하면 530억이 날아간다네. 웃기지도 않지. 대충 이렇게 저렇게 때려 넣어서 지들 멋대로 만들어낸 돈이라고. 2천800방울? 530억? 지들 멋대로지. 그냥.
아내_ 그걸 왜 거기다 갖다 붙여? 괜히 앉아서 누기 싫으니까. 그치, 나무야?
남편_ (걱정스런 눈빛) 좀 더 자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아내_ 갑자기 목소리는 왜 깔아? 일찍은 무슨 일찍. 자기가 늦게 일어났으면서. 밥이나 먹자.
남편_ (부엌으로 가려는 여자를 안으며) 앉아서 눌게. 한 방울도 안 튀길게. 됐지?
아내_ 나무야, 니네 아빠 갑자기 왜 이런다니.
남편_ 우리 그러지 말고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먹자. 어때?
아내_ 외식은 무슨. 귀찮아. 집에서 먹어.
남편_ 나가자. 나가서 바람도 쐬고 자기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아내_ 됐어. 그냥 집에서 먹어. 밥 금방 해.
남편_ 그럼 간단하게 먹자. 뭐 먹고 싶어? 말만해. 내가 다 해줄게.
아내_ 자기 할 줄 아는 게 라면밖에 더 있어?
남편_ 아, 걱정 말고 주문만 해.
아내_ 뭐, 그래도 자기가 끓여주는 라면이 맛있긴 하지. 근데 한 봉지밖에 안 남았는데 모자라겠지?
남편_ 내가 금방 가서 몇 개 더 사올게. 암 것도 하지 마. 내가 다 할 테니까.
아내_ 으이그. 생색은.
남자, 웃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간다.
아내_ 나무야, (창으로 다가가며) 은행잎이 많이 떨어졌네. 우리 나무, 은행나무 보이니? 우리 나무가 엄마한테 왔을 땐 은행잎이 새파랬는데 어느새 노랗게 변했어요. 시간 참 빠르다.
문 두드리는 소리. 곧이어 문이 열리며 양 손에 보자기로 싼 플라스틱 반찬통을 들고 여자의 시어머니가 들어온다.
아내_ 벌써.. (시어머니를 알아보고 달려간다) 어머니! 연락도 없이 웬일이세요?
시어머니_ 큰애는 큰애대로 안받고 너는 폰이 꺼져 있대고. 원 통 연락이 돼야 말이지. 이거나 받아라. 에그. 정리 좀 하고 살지.
아내_ (허겁지겁 감추기 시작한다)
시어머니_ 에그머니나. 애 떨어지겠구나. 하긴 니가 노조대표부람서 이직이나 할 수 있겠냐. 그래, 그놈의 회사엔 다시 안나가봐도 되는 거야?
남편_ 가보긴 해야겠는데 저 사람 저렇게 두고 계속 나가 있을 수도 없고. 일단 양해는 구해놨어요.
시어머니_ 나라도 챙겨주면 좋겠다만…. 내가 여기 와 있으면 지수 애는 또 누가 보냐.
남편_ 됐어요. 저희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남자는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창가로 다가가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남자의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고. 남자 창밖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사이.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온다.
시어머니_ 미역국은 냄비에 뒀으니까 데워먹기만 하면 되고, 밥은 앉혀 놨다. 에미 잘 챙겨 먹여라. 사산도애 낳은 거랑 진배없어. 지금 잘 조리하지 않으면 몸에 바람 든다. 알았어?
남편_ 네.
시어머니_ 그래, 난 이만 가보마.
남편_ 식사라도 같이 하시고 가시죠.
시어머니_ 이 꼴을 보고 밥이 넘어가겠냐? 에미한테는 바쁜 일이 있어 갔다고 전해라. 추운데 나오지 말고.
뒤돌아 나가는 어머니.
남편_ 엄마!
시어머니_ (돌아보며) 응. 왜?
남편_ 그냥.
시어머니_ 쓸데없긴. 간다.
고개 숙이는 남자. 서서히 암전.
일요일 오후. 창으로 석양이 비추며 거실이 온통 붉다. 거실에서 여자가 밥솥 째 밥을 먹고 있다. 김치를 손으로 찢어 게걸스럽게도 먹는다. 방에서 남자가 나온다.
남편_ 뭐해? 점심 먹고 또 먹는 거야? 제대로 좀 차려먹지. 이게 뭐야. 밥솥에 아주 그냥 얼굴을 묻겠다...뭐야? 그 많은 밥을 다 먹은 거야?
아내_ 그게… 계속 배가 고파서. 당신도 같이 먹을래?
남편_ 됐어. 점심 먹고 잤더니 난 영 속이 안좋아. 계속 밥을 먹는 여자.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아내_ (멈추고) 자기야. 나 추하지? 살도 많이 찌고. 보기 싫지?
남편_ 아니야. 당신 보약이라도 한 제 먹어야겠어.
아내_ 흐흐. 밥이 보약이라잖아. 괜찮아. 보약은 자기가 먹어야 하는데. 얼굴이 이게 뭐야. 밖에 있어도 밥 잘 챙겨먹고. 알았지?
남편_ 살 안쪘어. 그대로야.
아내_ 거짓말. 나 예전에 입던 옷이 하나도 안맞아.
남편_ (위 아래 보며) 잘 맞기만 하네.
아내_ 이거 당신 옷이야.
남편_ ….
아내_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며) 벌써 가을이네. 가을이 참 슬프다. 단풍 든 저 나무. 늙어빠진 창녀의 마지막 화장 같지 않아? 잎이 다 떨어져서 초라해지기 전에 하는 마지막 발악.
남편_ 너도 참.
아내_ 집주인이 내일 저 나무 벨 거래. 주택 정원에는 안어울린다나.
남편_ 응.
아내_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남편_ 집주인 마음이지 뭘. 요샌 가로수길에도 단풍나무 잘 안 심는데.
아내_ 당신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우리가 저 나무랑 함께 한 시간이 얼만데! 나무가 들으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남편_ 그 얘기가 아니잖아.
아내_ (울음)
남편_ 울긴 왜 울어? 나중에 주택사서 나무 많이 심어 줄게. 정원에 빽빽하게 발 디딜 틈도 없이 원 없 이 심어줄게.
아내_ 나무 없이 어떻게…. 이제 나 어떻게 살아? 응?
남편_ 내가 있잖아.
아내_ 나 아직 나무가 움직이는 걸 느껴. 꼬물꼬물. 뱃속에서 물고기가 꼬리를 흔드는 느낌.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이는 느낌.
남편_ 이제 놔주자.
아내_ 아니야. 아직 있을 지도 몰라. 의사가 잘못 본 걸 수 도 있어. 그렇잖아. 나 살도 계속 찌고. 밥맛도 너무 좋아. 나무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한 번만 한 번만 더 확인해 보자. 다시 한 번 봐달라고 해보자.
서둘러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 여자, 여자를 잡는 남자.
아내_ 이거 놔. 병원에 다시 가 볼거야.
남편_ 봤어. 내가 다 봤다고!
아내_ 아니야!
남편_ 내가 화장터 들어갈 때 봤어. 그리고 이 손으로 잘가라고 배웅도 해줬어. 그만하자. 응?
아내_ 아니야! 아니라구.
남편_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 억지 쓴다고 될 일도 아니잖아?
아내_ 그럼 당신은? 당신은 어딨었어? 우리 애가 그 지경이 될 동안 당신은 어디서 뭘 했어?
남편_ 그래! 다 나 때문이야. 이렇게 빌게. 내 잘못이야. 다 내가 못나서 이렇게 된거야. 됐어? 이제 속이 시원해?
아내_ 당신 그날 이후 날 한 번도 안아준 적 없었던 거 알아? 난 날마다 딴사람 품에 안겨 사랑을 나누는데. 당신은 한번도… 나는 나무만 잃은 게 아니라 당신도 잃어버린 것 같아서.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남편_ 그런 말이 어딨어? 나 여기 있잖아. (여자를 안는다)
아내_ 우리 엉망이다. 그렇지? 파산 직전에 사산까지. 사는 게 왜 이렇지?
남편_ 이런 게 사는 거지. 버라이어티하게~
아내_ (피식) 말이나 못하면….
남편_ 웃었지? 방금 웃었지? 얼레리 꼴레리 울다가 웃으면~~ 똥꼬에 털이 난데요.
아내_ 됐거든. 그나저나 세탁기는 어떡하지?
남편_ 그냥 쓰지 뭐. 속옷 세탁할 수 있다며.
아내_ 응. 써본 사람들이 엄청 편하대.
남편_ 그럼 됐어.
아내_ 자기야.
남편_ 또 왜?
아내_ 울었더니…배고프다.
남편_ 그래. 우리 뭐 좀 먹자.
아내_ 있지. 나무 가지고 내 인생 처음으로 뭔가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근데 그 일이 있고나서는 늘 배가 고파.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져서 하루 종일 먹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
남편_ 몸이 허해서 그래. 잘 먹어둬야지. 엄마가 이것저것 놓고 가신 것 같던데 밥 차릴까? 뭐 먹고 싶어?
아내_ 라면. 당신이 끓여주는 라면이면 돼.
남편_ 그래. 좋아. 최고의 라면 맛을 보여 주지. 자~ 여기서 편안하게 쉬고 있어.
남자는 부엌에서 분주하고 여자는 소파에 모로 기대어 눕는다.
아내_ 자기야.
남편_ 응?
아내_ 전에 TV에서 누가 그러던데 지구의 바다는 엄마의 양수와 같대.
남편_ 아이가 무의식의 산물이라 했던 그 사람?
아내_ 응. 그러고 보면 성장영화에서 소년들은 죄다 바다로 간다.
남편_ 그래?
아내_ 400번의 구타, 달콤한 열여섯... 바다 보고 싶단 사람은 왜 그렇게 또 많아? 아프기만 하면 바다 보고 싶대지.
남편_ 그러네.
아내_ 자기야.
남편_ 응?
아내_ 우리 나무도 바다에 뿌려줬댔지?
남편_ 응. 아버지 산소 앞에 있는 바다. 가볼래?
아내_ 그래도 될까. 이렇게 되려고 나무는 태몽도 안보여 줬나봐. (쿠션에 얼굴 묻는다)
서서히 암전
다음날 아침. 창문 너머로 보이던 은행나무가 사라지고 없다. 방에서 외출복을 입고 나오는 두 사람. 캐리어를 끌고 나온다.
아내_ 다 챙겼나 모르겠다.
남편_ 하룻밤 자고 오는 건데 뭐 챙길 게 있다고.
아내_ 그래도. 여행이잖아. 오랜만이다. 그렇지?
남편_ 신혼여행 갔다 오고 처음인가?
아내_ 이제 아셨어? 그때도 회사 근무 맞춘다고 2박3일로 제주도 다녀온 게 다였는데.. 5년 만에 외출이네.
남편_ 가자! 꾸물거리다가는 차 밀린다고.
아내_ 말이나 못하면!
남자 밖으로 나가고 여자 뒤따라 나가려다 다시 거실로 들어오며.
아내_ (밖으로) 자기야, 잠깐만 먼저 가고 있어.
남편_ (목소리) 왜?
아내_ 응. 뭘 좀 놓고 와서.
거실로 들어온 여자, 두리번거리다 창문 밖을 한동안 쳐다본다.
아내_ (배를 쓰다듬으며) 나무야. 상처 많은 나무일수록 더 예쁜 결을 만든다지? 너한테 부끄럽지 않게 견딜게. 참아 볼게.
남편_(소리) 뭐해?
아내_ 응. 나가!
밖으로 나가는 여자.
암전.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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