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관의 최고봉으로! 테이트모던
2010. 12. 2. 15:37ㆍ손간의 미주알고주알
11월 1일 인천을 출발한 저희 일행은 날짜 변경선을 통과해 5시경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장장 12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주리를 틀며 기다렸던 런던에 도착했을때 역시나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됐다는 히드로 공항을 보며 사람들은 "공항은 인천공항이 최고야!"를 외쳤지요.
좀 지난 일이지만 저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 한창일때 영국에 간 일이 있었어요. 그땐 공항 천장에서 비가 새고 있어서 조금 충격이었답니다. 한데, 짧은 기간이지만 영국의 문화공간을 둘러보고 박식한 가이드 선생님에게서 영국인의 삶과 문화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게 다 그들의 삶과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빨리 신식건물을 짓지 않고 옛 시설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지요. 그래도 이렇게 낡고 작은 공항에서 어떻게 그 많은 출입국인원을 처리해낼까 의문이 들었는데요. 알고보니 부족할 때마다 터미널을 추가로 지어서 지금은 5군데로 운영된답니다. 그래서 히드로 공항을 이용할 때는 몇 번째 터미널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쉽게 부수고 새로짓는 게 아니라 있는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과거의 손때가 묻은 공간, 시설, 기기를 함부로 없애지 않는 것, 그러한 삶의 철학이 히드로 공항 운영에도 있었던 겁니다.
아시다시피 영국과 한국은 8시간의 시차가 납니다. 11월 1일 1시 10분에 탄 비행기가 12시간을 날아 1일 4시 20분에 도착했어요. 미셸 우엘벡 소설에서 비행기에서 있는 시간을 '중립의 시간'이란 표현으로 빗댄 적이 있는데, 저는 그 중립의 시간 동안 두 번의 식사와 두 번의 간식, 화이트와인 한 잔, 레드와인 한 잔을 먹고, 4편의 영화와 기억나지 않는 소소한 잡답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4시 20분에 도착해 숙소에 들어가기전 현지에서 저녁밥을 먹으려니 1일 동안 도대체 몇 끼를 먹은 것인가 새어보게 되더군요. 제게 '중립의 시간'은 이렇듯 아픈 꼬리뼈를 달래가며 끝없이 먹었던 '식사의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런던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히드로 공항 근처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공식일정은 2일부터였고요. 지난 지역문화활동가 연수 동기들은 방에 모여 밤을 안주 삼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지요. 이날부터 또 우린 그동안 비축해둔 체력을 소진시키기 시작했고, 예상할 수 있다시피 낮과 밤의 무한 수다는 마지막 밤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사진의 맨 위쪽이 테이트모던의 전면, 아래 왼쪽이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해바라기씨>가 전시되고 있는 1층 전시공간이다. 오른쪽은 안내를 맡은 제임스 힉스와 설명을 듣는 우리 일행.
좀 지난 일이지만 저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 한창일때 영국에 간 일이 있었어요. 그땐 공항 천장에서 비가 새고 있어서 조금 충격이었답니다. 한데, 짧은 기간이지만 영국의 문화공간을 둘러보고 박식한 가이드 선생님에게서 영국인의 삶과 문화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게 다 그들의 삶과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빨리 신식건물을 짓지 않고 옛 시설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지요. 그래도 이렇게 낡고 작은 공항에서 어떻게 그 많은 출입국인원을 처리해낼까 의문이 들었는데요. 알고보니 부족할 때마다 터미널을 추가로 지어서 지금은 5군데로 운영된답니다. 그래서 히드로 공항을 이용할 때는 몇 번째 터미널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쉽게 부수고 새로짓는 게 아니라 있는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과거의 손때가 묻은 공간, 시설, 기기를 함부로 없애지 않는 것, 그러한 삶의 철학이 히드로 공항 운영에도 있었던 겁니다.
아시다시피 영국과 한국은 8시간의 시차가 납니다. 11월 1일 1시 10분에 탄 비행기가 12시간을 날아 1일 4시 20분에 도착했어요. 미셸 우엘벡 소설에서 비행기에서 있는 시간을 '중립의 시간'이란 표현으로 빗댄 적이 있는데, 저는 그 중립의 시간 동안 두 번의 식사와 두 번의 간식, 화이트와인 한 잔, 레드와인 한 잔을 먹고, 4편의 영화와 기억나지 않는 소소한 잡답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4시 20분에 도착해 숙소에 들어가기전 현지에서 저녁밥을 먹으려니 1일 동안 도대체 몇 끼를 먹은 것인가 새어보게 되더군요. 제게 '중립의 시간'은 이렇듯 아픈 꼬리뼈를 달래가며 끝없이 먹었던 '식사의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런던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히드로 공항 근처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공식일정은 2일부터였고요. 지난 지역문화활동가 연수 동기들은 방에 모여 밤을 안주 삼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지요. 이날부터 또 우린 그동안 비축해둔 체력을 소진시키기 시작했고, 예상할 수 있다시피 낮과 밤의 무한 수다는 마지막 밤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사진의 맨 위쪽이 테이트모던의 전면, 아래 왼쪽이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해바라기씨>가 전시되고 있는 1층 전시공간이다. 오른쪽은 안내를 맡은 제임스 힉스와 설명을 듣는 우리 일행.
2일 첫 방문지는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과 더불어 영국 최고의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테이트모던'이었습니다. 테이트모던은 말그대로 1900년대 이후 현대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고요. 또 상설전시관에선 테이트모던 갤러리가 보유한 작품들을 전시합니다. 갤러리가 보유한 작품수가 많아서 대부분의 작품은 다른 곳에 있다고 하네요.
테이트 모던은 2000년에 문을 열었는데, 건물은 방치되어 있던 템즈강변의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리모델링한 것입니다.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졌던 화력발전소인데요. 1981년 문을 닫은 상태로 계속 방치되다가 영국 정부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조된 것입니다. 당시 국제 건축 공모전에서 스위스 건축회사가 선정이 됐는데, 그 이유가 건물 외관을 최대한 유지한 상태에서 개조 계획을 짰기 때문이라니 영국인들의 '최대한 있는 그대로' 사랑은 알아줄만 하지요? 런던 중심부에서 10여년 동안 방치된 공장이 부서지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할 일입니다.
테이트모던은 1층은 본관입구, 특별전시실이 있고 2층은 세미나룸, 기획전시실 등, 3층, 5층은 상설전시 공간, 4층은 기획전시공간으로 되어 있어요. 6층은 멤버스 룸, 7층에는 레스토랑, 바 등이 있고요. 우리가 둘러본 곳은 1층과 2층, 3층, 4층. 마침 그날은 고갱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오전부터 사람들이 줄서서 들어오고 시간이 갈수록 미술관은 마치 시장통처럼 사람이 북적거렸습니다. 제가 만난 테이트모던은 곳곳에 책이나 멀티미디어 자료가 비치되어 있어 학습공간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교복을 입은 어린 친구들부터 고등학생, 대학생, 노년층 할 것 없이 정말 사람들로 활력이 넘치는 공간이었어요.
모두 7층으로 구성된 테이트모던의 입구는 크고 널찍한 로비에서 시작되어 각각의 층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외관으로는 공장의 굴뚝을 그대로 두고 밤에는 불빛을 내도록 해서 건물 자체만으로도 큰 볼꺼리가 된다.
앤디 워홀의 방에서 스케치를 하는 학생들과 전시를 설명하는 멀티미디어자료를 보고있는 관람객들.
안내를 맡은 제임스 박사는 테이트모던의 전시방식이 시대나 사조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아이디어(idea)에 따르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공간을 둘러보면서 기존 미술관에서와는 다른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테이트모던은 매년 한 작가를 선정해 그 작가의 작품을 6개월 동안 전시하는 기획전을 마련하고 있는데, 올해는 중국의 설치예술가 아이 웨이웨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어요.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회색빛 작은 돌 같은 걸 가득 늘어놓은 게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해바라기씨>입니다. 13억개의 해바라기씨를 만들어서 바닥에 깐 것이라는데요.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게 보이시죠? 이처럼 거대한 작품을 구상하고 실행해 옮길 수 있다는 점도 테이트모던이 가지고 있는 공간상의 큰 장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해바라기씨>가 전시된 테이트모던 1층 기획전시실.
"정말 13억개가 맞을까?"라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는데 제임스 박사가 눈치를 챘는지, "해바라기씨가 하나 둘씩 없어져 우리도 고민이다. 개당 1파운드(우리돈 약 1800원)인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더군요. 여기서 13억개의 해바라기씨는 13억 중국인구를 가리킨데요. <해바라기씨>는 13억 노동자의 나라, 중국을 은유한 작품이고요. 해바라기씨는 진짜가 아니라 모형입니다. 아이 웨이웨이가 몇 개월 동안 인부를 고용해 만들고 그린 것이라는데 진짜가 아니라는 말에 깜짝 놀랄 정도로 진짜 같아요. 이 역시 짝퉁의 천국이라는 중국의 실상을 반영한 걸까요...흠흠. 요즘 현대 예술은 이렇게 예술가가 직접 작업하지 않고 자신은 아이디어를 내고 나머지 작업은 사람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걸 개념미술이라고 하죠. 이처럼 테이트모던은 팝 아트, 미니멀 아트, 개념미술 전시로 유명합니다.
한 해 500만명 이상이 찾는다는 테이트모던은 이제 명실공히 세계적인 미술관이 되었습니다. 애물단지였던 발전소의 변신치고는 대단한 변화이지요? 테이트모던하면 떠오르는 첫 이미지는 화력발전소를 개조해서 만든 현대식 미술관이라는 것이고, 이는 테이트모던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단연 가장 큰 이유가 됩니다. 지금은 좀 더 많은 작품들과 더 많은 관람객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옆쪽에 11층짜리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고 하는데요. 그 건물 역시 발전소의 관이 있었던 장소를 활용하는 것이랍니다. 정말 테이트모던은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개관시간 전부터 줄지어 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이며 점심때쯤 되자 전시실마다 관람객이 끝없이 들어오는 '명소'였지요.
오래된 건물, 근대의 건물 할 것 없이 죄다 부서버리고 다시 짓기 바쁜 우리나라의 실정에서는 영국의 이같은 공간재생방식이 낯설고 대단하다고 여겨집니다.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고 시민적 합의에 기반한 의사결정구조가 너무나 부러웠고요. 옛 서울역 청사나, 시청건물이 허무하게 방치되고 부서질때 화가 났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테이트모던은 문화, 예술을 통한 도심, 공간재생방식은 무조건 새 건물이나 뉴타운을 짓는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 역사 등을 함께 직조해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는 그것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공사중인 테이트모던 신관의 공사현장(위)과 다 짓고 난 후의 청사진(아래). 그림에서 왼쪽 굴뚝이 보이는 건물이 현재의 테이트모던이다.
하지만 테이트모던의 재정이 정부 25% 대 민간부문 75%라는 제임스의 설명은 테이트모던의 독립성에 우려를 남깁니다. 우리가 도착한 날 즈음하여 영국 정부의 재정정책이 변화되고 문화, 산업 분야 등 각 분야의 커다란 변화가 예고되었는데요. 그래서 몇몇 단체들에서는 축소된 예산으로 인해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즈음 뉴스에서는 대학등록금이 대폭 오르고 지하철이 파업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고요. 제임스 박사는 정부의 긴축재정을 미리부터 준비해서 테이트모던의 재정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테이트모던의 세계적 위상이나 관광객 유치에 대한 기여 부분이 또한 재정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고요.
정부에서 받는 예산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간부분에서 받아들이는 재정 비율이 높다보니 기부를 하고 있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 기부를 이끌어내는지가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테이트모던은 기부를 많이 한 기업들에게는 파티를 제공하기도 하고, 그들만을 위한 전시를 하기도 하며 미팅룸 대여 등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정착된 영국의 풍토에서 그러한 방식은 큰 반발을 일으키지 않는 모양이지만 이는 영국과 같은 상류층의 기부문화를 형성하고 있지 못한 한국 사회에 적용해 도입할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3년 화력발전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 침체된 영국을 상징했던 것처럼, 오늘날 테이트모던의 국제적 명성이 문화대국으로서 선두에 서려는 영국을 대표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 보너스 인물
- 이름 : 제임스 힉스
- 출신 : 미국 버지니아주
- 매력 : 곱슬머리, 넉살, 뱃살, 그냥 살, 면바지에 스니커즈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유머.
- 총평 : 테이트모던 방문이 즐거웠던 건 단지 테이트모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안내를 해준 제임스 박사 덕분이었죠. 설명 중 간간이 나오는 그의 유머는 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 수 밖에 없게 했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4층 기획전시를 꼭 봐야하는데 그 이유로 작품을 전시한 미술가가 현대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설명했어요. 우린 4층으로 가서 흰 캔버스에 붉은 물감을 휘저어 그린 듯한 그림 몇 점을 만났는데, 제임스는 '그가 버지니아 출신이고 나도 버지니아 출신이다. 하하하'하고 웃었습니다. (그 미술가는 텀블리라고 하는 추상미술가) 그의 유머에 반하고 말았어요. 후후후.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를 발견하는 기쁨을 이에 비할까요. 흠. 보고싶군요. 제임스....
'보너스 인물'은 계속됩니다. 쭉~
(사진 : 조수현_예술경영지원센터/ 글: 손상민_가곡전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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