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탄] 우리는 왕-왕-초보들!

2009. 4. 14. 14:51왕초보 노래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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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배우고 싶어서

나는 국문학, 그것도 현대소설을 전공한 사람이다. 황순원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내가 제자 둘을 거느리고(?) 영송당 선생님께 노래를 배우게 되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이유들이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그저 배우고 싶어서'였다.
노래를 배워서 우리나라 가곡창을 이어가겠다는 사명감도 없고, 노래를 잘 불러서 일가를 이루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없다. 그저 내 투박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더러 나를 아는 사람 앞에서 조금 뽐낼 정도로만.
근데 그 뽐낼 날이 언제 올지 지금으로선 요원하기만 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한 곡쯤은 잘 부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꿈은 아직도....
영송당 선생님에게 노래를 배운 지 벌써 7-8개월이 되어간다.우리들은 모두 음악과는 거리가 먼 인간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왕-왕-초보들이다.

우리가 선생님을 따라 노래하는 소리를 선생님께서 얼마나 고역스럽게 듣고 계실지
민망하다.하지만 워낙 기초가 안 돼 있으므로 좀체 늘지도 않는다. 선생님께선 우리의 상태를 완전 파악하시고 그러려니하고 이해하시고 계신 듯하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하신다. 선생님은 벌써 우리를 다 떼시고 우리의 속을 훤히 읽고 계시다.


노래보다 더 좋은 선생님 '말씀'

그래서 우리는 정말 스트레스 안 받고 놀이 삼아 노래를 배운다. 어떤 경건한 선생님의 제자는 '가벼운 것들--'이라고 퉁박을 줄 지 모르지만 그래도 왕초보의 특권으로 우리는 놀이삼아, 설렁설렁 노래를 배울 것이다.

우리의 수업은 노래 부르기보다는 이야기 하기가 주가 될 때가 많다. 원래 학습 부진아들이 진도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듯 우리도 진도가 너무 빨리 나가는 것을 무서워 한다.
사실 음정, 박자 어느 것 하나 비슷하게 소리내는 것도 아직은 어려운 지경이므로선생님과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아주 재미나서 어떤 때는 그 녹취를 재생해 들으며 슬며시 혼자 웃곤한다. 나는 선생님의 노래도 노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더 좋아한다.

그것은 노래와는 달라서 기록하지 않으면 정말 사라지고 말 것이기에, 이렇게 글을 쓰기로 했다.
앞으로 틈이 나는 대로. 중계할 것이다. 자 그럼 중계 시작!

"이런 노래를 엇시조라고 하지요?"
"네? 사설시조 아니에요?"
"국문과래도 이렇게 감감하신 분도 있네요."
"예, 사실 저 엇시조, 사설시조 어떻게 구별하는 지 몰라요."
"엇시조는 어긋지기, 반지기....이도 저도 아닌 거지요. 글자수가 (표가 나게) 많이 늘어나면 사설이지만, 어중간하게 늘어난 것은 엇시조지요.
초장에 세 박이 넘쳤지요. 이렇게 어중간한 게 엇시조예요."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조' 항목에서 "종장 제1구를 제외한 어느 한 구절이나 하나만 길어진 것을 엇시조라 부르고, 두 구절 이상 길어진 것을 사설시조라 부른다.
'한 구절'에서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누가 리플 좀--)

"롱은 흥청거리면서 부르는 노랩니다. 저번에 배운 '락'은 칠락팔락하면서 부르는 노래구요."
'롱은 흥청흥청, 락은 칠락팔락' 아주 심심한 설명 같지만 그 느낌, 소위 필이 팍 전해오는 설명이다.
언제나 선생님의 설명은 감각적인 언어로 그 느낌을 곧바로 우리에게 전해주신다.
우리의 표현력이 아직 부족하므로 그대로 느낌을 살려내지는 못하겠지만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 듯하다.


우리 민족은 변통의 귀재들

"북-두" 처음부터 이상한 소리를 냈다.
황의 '북'과 중의 '두'. 황에서 중으로 내려오기 위해 '황' 소리를 낸 후 추성으로 올리고, 중으로 내려온다. 내려오기 위해 한 칸 더 올라갔다 내려오는 발성을?
급작스런 하강을 위해 한 숨 돌리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내려오는 맛을, 멋을 한껏 더 내기 위해 더 올라가는 것일까? 롤러코스터 탈 때처럼?
황을 조금 올렸다 중으로 내리자 신기하게도 소리가 매끄러워졌다.

이 노래는 종장을 아주 신기하게 부른다. 계면으로 끝을 내는 곡과 우락을 부르기 위해 평조로 종장의 후반 가락을 바꾸어 부른다.

선생님 왈:

"우리 민족은 변통의 귀재들이죠.
몇 개 안 되는 가락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재주를 부리니 말이죠.
김치 하나 가지고 김치찌개도 했다가, 부침도 했다가, 부침도 했다가 하는 것처럼요.
집도 처음에는 일자로, 아들이 하나 생기면 니은자로, 아들이 또하나 생기면 디귿자로, 아들이 또하나 생기면 미음자로, 그 다음은 뒷채로 연결, 연결.... 이런 식이죠.
우리민족은 이렇게 변통력이 좋아서 생명력이 강해요."


우리 민족의 이 변통력은 달리 말하면 적응력, 응용력이라고 할까?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 적응하는 힘.
'파괴와 축조'라는 혁명의 논리와는 분명 다르다.
'기존을 변형하는 대안'의 논리이다. 자연친화적이며, 유기적인 방식이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두고두고 더 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