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탄] "공을 들여서 불러야"

2009. 4. 14. 17:27왕초보 노래배우기


그동안 배운 가곡을 모두 불러보는 시간.
그리하여 불러야 할 가곡은 평조 이삭대엽 <버들은>, 평조 중거 <청조야>, 평조 평거 <일소>, 평조 두거 <일각이>, 반우반계 반엽 <남하여>, 계면조 이삭대엽 <이화우>, 계면조 평롱 <북두>, 반우반계 환계락 <사랑을>, 계면조 편삭대엽 <모시를> 이다.


어려운 곡부터 먼저 배워야

그동안 이렇게 많은 가곡을 배웠다니!...
처음 <버들은>은 가르쳐주실 때 영송당 선생님께서는 빼어난 가곡 중 하나인 <버들은>은 결코 쉽지 않은 곡이지만 이 곡 하나를 제대로 배워두면 다른 곡들을 보다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좀 어렵더라도 <버들은>을 첫 곡으로 가르치신다고 하셨다. 덧붙여 초보자 입장에서는 쉬운 곡이든 어려운 곡이든 모두 어렵기 때문에 어려운 곡으로 시작하는 것이 더 나으며 이러한 학습법이 우리나라 전통의 교육방법이기도 하다고 하셨다. 허교수님 역시 그러한 교육방법에 동감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버들은>을 배우는데 3~4주가 걸렸다. 처음 접하는 음악이었기 어느 정도의 적응 시간이 필요했고 악보의 기호와 가곡의 구조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배울 모든 가곡들의 중요한 뿌리가 될 곡이었기에 영송당 선생님께서는 성급한 마음으로 빨리 한 곡을 배우고 싶어하는 제자들에게 서둘지 말고 하나하나 제대로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이후의 곡들은 공연을 앞둔 申과 함께 수업하면서 많은 곡들을 함께 배우게 되었다.)

영송당 선생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가르침이란 이러한 것이라고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교육의 목적이 대학 합격으로 전락해버리고, 학교에 머무는 시간만큼, 혹은 그 이상을 학원에서 보내면서 얼마를 내 것으로 익혔느냐보다는 얼만큼의 진도가 나갔느냐로 배움의 양을 가늠하는 흐름 속에-진도 빼는데 급급한 분위기에- 익숙해 있던 내게 제자가 제대로 여물도록 돌보시며 기다리시는 영송당 선생님의 느긋함은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단 한 번을 해도 공을 들여서 해야"

조상들이 호연지기의 방법으로 가곡을 불렀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던 나는 선생님의 이러한 가르침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교과서에서 읽었으나 그다지 느끼진 못했던 '반만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인의 정신이란 이러한 것이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빠르게 밀려들어오는 서양의 사상, 문화 등을 쫓기 바쁘고, 일명 스피드 시대라고 하는 속도의 경쟁 시대에서 남보다 빠르지 못하면,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쫓아가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한국인들 중 하나인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정신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었는가. 영송당 선생님의 교육방법 속에서 가곡의 선율 속에서 그동안 내가 느끼지 못했던, 몇 백년 전 호연지기를 위해 가곡을 부르는 한국인의 정신, 그 향기가 희미하게나마 느껴졌다.

이러한 가곡은 정말 잘 부르고 싶은데 마음만큼 노력하지 않아 나의 실력은 그다지 진전이 없다. 언제나 열심히 가곡을 듣고 연습하시며 생활화하시는 허 교수님께 영송당 선생님께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하셨으나 자신감 없는 나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자 영송당 선생님께서는 내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시며 나의 연습부족을 꾸짖으셨다.

"공력을 쌓아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연륜은 쌓이지만 공력은 시간이 흐른다고 쌓이는 게 아니다. 한번을 부르더라도 정성을 다해서 불러야 공력이 쌓인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공력은 쌓이지 않는다. 단 한번을 해도 정성을 다해, 공들여서 해야한다."

고 하셨다. (영송당 선생님 말씀 명심해서 공력을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청조야>의 "청조야 오도고야"에서 "오"의 음이 악보에는 '중.남'으로 되어있으나 '태.남'으로 들린다하여 '태'로 고쳤으나 앞음절인 "야"가 '태'로 끝난 후 "오"를 부를 때에 '중'으로 음이 올라가게 되므로 '중.남'이 맞다고 하셨다.

가곡의 다양한 곡을 두루 배우는 동안에도 배우지 못했던 평조 평거 <일소>를 배웠다. 처음 부르는 것이었는데도 선생님을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초장의 "백미"를 부를 때에 "뱅미"라고 흘려 발음하지 않고 "백.미"라고 끊어서 정확하게 발음해야 한다.

허 교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이화우>. 삼장에서 마지막 부분 "생각는가"에서 "각--"을 부를 때 반드시 두성발음을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창이 되기 때문이다. 오장에서 "외로운"에서 "외"는 "외"라고 발음하지 않고 "오 ㅣ"("오"는 "오"와 "어"의 중간 발음처럼 들렸다)로 발음해야 한다.

글쓴이 : 이기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