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1. 17:17ㆍ왕초보 노래배우기
지난 6월 18일(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영송당 선생님과 申과 함께 정가극 "황진이"를 보았다. (병환 중이신 허명숙 교수님께서는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하셨다.)
정가극을 보기 며칠 전 申으로부터 "정가극 공연이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만해도 사실 나는 정가극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몰랐다. 다만 가곡이 많이 나오는 국악극이려니 짐작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마당놀이나 서양의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국악, 특히 가곡으로 극이 진행되는 것이려니 하고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실감
남부터미널 5번출구로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예술의 전당을 지나 국립국악원 정류장에 내려 지하도를 건너 국립국악원으로 향했다. 예술의 전당이나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지만 국립국악원은 처음이었다. 솔직히 국립국악원이 그 곳에 함께 있는 줄 미처 몰랐다.
관심이 있는 만큼, 혹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동안 예술의 전당이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리면서 국립국악원이라는 커다란 글씨를 보지 못했을리 없을텐데 관심 밖이라는 이유로, 혹은 심리적 거리감으로 머릿 속에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우측에 자리잡은 국립국악원 예악당 건물을 맞이하던 순간은 그동안 내가 우리 음악에 대해 얼마나 많은 거리를 두고 살았는지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7시 30분 공연을 50여분 앞두고 예악당 대기석에서 김밥으로 식사를 대신하고(대기석에 앉아있는 동안 영송당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오는 많은 분들을 볼 수 있었다. 국악인에서 예고생들까지 다양했는데 담당선생님을 따라 교복을 입고 영송당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온 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영송당 선생님은 무척 반갑게, 격의 없이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셨고 열심히 하라는 격려도 잊지 않으셨는데 그 모습이 내게 무척 아름다워보였다.
그리고 국악을 하는 청소년들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가슴이 뭉클하면서 감동이 일었다. 우리나라의 음악이 이렇게 계승되어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출연진이 소개되는 모니터와 공연 팜플렛을 보며 공연 내용을 숙지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니까^^ 줄거리 정도는 알아둬야 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극 전체가 가곡으로 진행될 경우 대사를 못 알아들을 수도 있으니까.
보는 내내 감탄한 우리 것의 아름다움
담양 소쇄원을 그대로 본따왔다는 무대 위에 여인 황진이가 소리의 이치를 찾아 서경덕을 찾는 장면으로 극이 시작되었다. 극을 보면서 내내 감탄했던 것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나라의 한복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우리나라의 춤이, 그리고 우리나라의 음악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었구나하는 감탄 말이다. 그리고 다른 것은 잘 구별하지 못했지만(시조 등) 극 중간에 나오는 가곡을 알아들었던 것은 개인적인 기쁨이자 성과였다. 범인인 내 눈에 비친 정가극 황진이는 비교적 자연스러워보였다.
노래와 춤으로 극이 진행되지만 관객과 섞이며 함께 녹아드는 마당놀이와는 달랐고 서양 오페라를 연상시키기는 했지만 그것을 닮으려는 듯한 느낌이 없었다. 내 짧은 안목으로 노래와 춤에 대해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극의 서사에 있어서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노래극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는 좀더 생각해 보아야 겠다.
정가극 "황진이" 속의 황진이는 '소리의 이치를 찾는 황진이'이다. 극은 서경덕을 찾은 황진이에서 출발하여 황진이의 과거사-기생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는 황진이, 양반과 시재를 겨루는 황진이 등-를 회상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세상을 흘러다닌 황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노력은 서경덕 아래에 있을 때도 계속되고 마침내 서경덕이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에 이르자 황진이는 다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길을 떠나면서 극은 막을 내린다.
(개인적으로 나는 황진이와 이사종의 이별장면(제6장 별리)과 황진이와 이언방의 만남(제 10장 상사몽)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 깨달음을 위해 여섯 해를 함께한 이사종과 이별하고 거렁뱅이같은 모습을 한 이언방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 현자의 깨달음을 얻는 황진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곡을 부른 조상들의 정신과 닮은 황진이의 삶
이번 '황진이'를 시작으로 정가극이 처음 시도된 것(극은 물론이고 노래도 극을 위해 새로 작곡된 곡들도 있었다고 한다. 극이라는 점에서 가곡보다는 템포와 가사전달에 있어 비교우위일 수 있는 시조가 주류를 이루었고 이들 역시 창작 시조들이 선보였다. )이라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첫 시도로써 '황진이'를 택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황진이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세상의 현자들을 찾아 다니는 모습은 호연지기를 위해 가곡을 불렀다는 조상들의 정신과 닮은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곡의 이러한 의미와 깨달음을 향한 황진이의 삶의 일치, 이것이 이 극이 주는 가장 큰 감동이었다.
공연 관람 후 영송당 선생님께서는 첫 시도라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창작곡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의 노력실력과 연기력, 그리고 극의 흐름 등 앞으로 많은 점들을 보완해 나가길 바라신다는 조언도 해 주셨다. 이제 이 첫걸음을 바탕으로, 보완할 부분들이 개선되면서 정가극은 계속 발전되어 가리라 기대한다.
정가극 "황진이"의 주제 음악의 가사를 아래 함께 한다.
만물은 오고 또 와서
끝 없이 오나니
다 왔는가 하고 보면 다시 쫓아오네.
만물은 오고 또 와도
다 오지 못하니
다 왔는가 하고 보면 또 다시 쫓아오네.
오고 또 오는 것도
시작 없던 곳에서 오는 법이거늘.
묻노니, 그대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제 7 장 화담에 들다 - 중에서)
만물은 가고 또 가서
끊임없이 돌아가니
다갔는가 하고 보면
아직 지금도 가지 못하네
가고 또 가는 것도 원래
끝이란 없는 법
묻노니
그대가 돌아가는 곳은 어딘가?
(제9장 산향악- 중에서)
만물은 가고 또 가서
끊임없이 돌아가니
다갔는가 하고 보면
가버린 것이 아니네
가고 또 가는 것도
끊이 없는 곳으로 가는 법이거늘
묻노니,
그대가 돌아가는 곳은 어딘가?
(제10장 상사몽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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