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탄] 가곡 반주는 어떻게 하나

2009.04.21 17:28왕초보 노래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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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한 달 병마와 싸우느라 ‘왕초보의 노래 배우기’를 쓰지 못했다. 물론 수업도 받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왕초보-’ 조회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을 알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저 심심풀이 삼아 쓰는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사실에 한 줄기 땀이 등골을 타고 재빨리 흘러 내렸다. 병든 몸이 더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니, 다소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더라도 귀엽게 봐주시길.. 우리는 ‘왕초보’니까.


고통 중에 부른 '버들은'

병마와 싸우며 나는 노래의 또 다른 효능(?)을 체험하게 되었다. 늑막염을 앓고 있는데, 사람마다 늑막염은 병도 아니라고 하지만 ‘남 염병 내 고뿔만 못 하다’고 내겐 늑막염이 암에 버금가는 큰 병으로 체감되었다. 그리고 이 병을 앓아 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물을 뺄 때의 고통은..... 며칠 전에 늑막염으로 물을 빼본 사람와 동병상련의 대화를 나누었는데 마치 함께 전투를 치뤘던 전우를 만난 기분이었다.

조금 살벌하게 묘사하면 등에 주사바늘을 꼽아 물을 뺀다. 그 시술을 하기 전에 아프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물론 아프겠죠”라고 경쾌하게 대답했다. 그 과장되게 높은 목소리에서 내가 곧 겪을 통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주사에는 가는 튜브가 연결되어 있고, 튜브 끝에 있는 병으로 늑막간의 물이 고인다. 삼사십 분간 온 몸이 그 가는 튜브를 따라 빨려 나가는 듯한 기묘한 고통을 겪으며 기도도 했고, 신음도 뱉었다.

참다참다 못 해 <버들은>을 속으로 불렀다. 왜 그 순간 그것을 했는지 웃길 노릇이다. 노래도 제대로 모르면서 심호흡을 하랬는데, 심호흡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아무리 의지적으로 해보려 해도 너무 아프니 심호흡이 안 되었다. 그래서 <버들은>을 부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니 그 전보다 고통이 훨씬 덜 느껴졌다. 눈을 감고 내가 마치 버들가지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꾀꼬리가 되는 상상을 했다. 나중에 영송당께 이 일을 말씀 드렸더니 매우 기뻐하셨다. 나도 행복했다.
고통 중에 계신 분들 가곡을 부르시라. 효과 만점!!


선생님의 칭찬과 꾸짖음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왕초보는 7월 30일에 연주회를 가진 신혜선 선생과 수업을 함께 하는 광영을 누렸다. 우리 같은 왕초보들이 몇 달 뒤에 연주회를 앞둔 전수생과 노래공부를 같이 하였던 것이다. 처음에 진도가 빨라 어리둥절했지만 덕분에 고급과정을 미리 경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무엇이 고급과정이냐면??? ................ 소리의 미세한 질감을 표현하는 발성법, 호흡법, 가사 표현법, 구강 모양 등등 많지만 솔직히 소화가 안 된 관계로 우리에겐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그런데 영송당 선생님의 비법인 듯하므로 소화 되는 대로, 아니면 소화 안 된 채로라도 차차 조금씩 아주 은밀히 공개하려 한다. 이번에 말고 그 언제가의 다음에. 비법은 너무 쉽게 노출되면 비법의 아우라가 사라지므로....

어느 날 수업 끝에 영송당 선생님께서 나에 대한 칭찬을 최초로 해주셨다.

“허 교수님은 비교적 많이 느셨어요.”

“아직 음정 틀리는 데가 많았는데요?”

“옛날에는 엉망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엉망은 아니에요.”


이 부분의 녹음을 들을 때마다, 그 동안 혼나지 않으니 그럭저럭 하나보다고 스스로 착각한 내 자신이 멋쩍어 빙그레 미소를 머금는다. 그동안 엉망이었는데도 선생님께서 한 번도 꾸짖지도, 잘못을 말하지도 않으셨던 것이다. 얼마나 귀가 괴로우셨을까. 다른 왕초보들도 알아 두시길! 선생님께선 엉망일 때 절대 꾸지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 좀 된다’ 소리를 듣기 전까진 자신의 노래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신혜선 선생에 대해서도 늘 잘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런데 연주회를 일주일 앞둔 날, 우연히 영송당 선생님께서 신 선생을 불같이 꾸짖는 광경을 목도하였다. <버들은>을 부르는데 치키는 요성이 안 된다며 가야금을 가져오라고 언성을 높이셨다. 나는 선생님 앞에서 입을 꼭 다문 채 얼어붙어 있었다. 가야금으로 ‘임’을 짚어 ‘남’오로 올리는 소리를 들려 주시면서 소리를 바로 잡도록 했다.(치키는 요성은 임종에서 태주로 가는 사이에 가장 많이 나오는 시김새로 임종이 남려로 치켜 올려지는 시김새이다.)

그런 과정에서 애꿎게 가야금 줄이 몇 번 끊어졌다. 영송당 선생님께서 그렇게 격노하신 것을 처음 보는 나로서는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신기했다. 소위 말하는 그 쌀벌한 공기는 지각생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흐트러졌다. 끊어진 가야금 줄 덕인지, 지난 7월 30일 연주회에서 신혜선 선생의 <버들은>은 정말 멋졌다. (영송당 선생님도 그리 평하셨고, 내 어두운 귀에도 그렇게 들렸다.)


“선생님 기분 되게 좋으신가봐. 쪼금 흥분하신 것 같지 않니?”

신 선생 연주회 덕에 또 하나 이채로운 체험을 했는데, 반주와 함께 가곡 연습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었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국악기를 다루고 있는 모습을 보니 ‘국악’과는 먼 동네에 있었던 나로서는 감개무량이었다. 물론 공연장에서 국악 반주나 연주를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대가 아닌 생활공간에서 평상복을 입은 그것도 생기발랄한 청년들이 국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오버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우리 음악의 앞날이 밝아지는 듯하면서 뿌듯했다. (오버가 확실하다.)

영송당께서도 반주에 맞추어 신 선생이 연습하는 것을 그 날 처음으로 보신 듯했다. 영송당께서는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을 준비할 때 악기 소리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 주셨다. 그러시는 모습이 평소보다 더 환했고, 얼굴에 약간의 홍조마저 띠고 호기심 가득찬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셨다. 이 또한 왕초보인 우리들이 처음 접하는 장면이었다. “선생님 기분 되게 좋으신가봐. 쪼금 흥분하신 것 같지 않니?”라고 반주 중간에 속삭였다.

신 선생의 노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신 선생의 노래소리가 작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란다. 원래 반주는 노래를 능가하면 안 되는 법이란다. 영송당께선 첫째로 지적하신 것이 바로 반주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반주는 언제나 노래를 돋보이게 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가야금은 절대로 거문고 소리를 넘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대금은......, 피리는......., 등등.

다음 날 우리는 어제 반주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다시 들려 달라고 청했다. 각 악기 소리의 특성을 말씀하면서, 어떻게 서로서로의 소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말하셨던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을 알면 나중에 가곡연주회를 들을 때 반주소리를 듣는 재미를 알게 될 것도 같고, 또 국악 기악곡을 듣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맞는 말일까?)


가곡반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악기만큼 작음의 폭이 큰 것은 아니지만 관악기-피리, 대금, 단소등-도 작음이 가능하다. 편경, 편종, 운라, 방향 등처럼 유율타악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작음이 되는 것이 우리 악기의 특징이기도 하다.

먼저 피리와 대금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가곡반주에서의 피리는 향피리가 아닌 세피리가 사용이 된다. 가곡은 풍류방 음악으로 방중악이기에 소리가 큰 향피리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방중악에 알맞는 세피리를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소리가 멀리는 안 간다. 가깝게 나는 소리이다. 그러나 큰소리나는 향피리보다 작은 소리를 내는 세피리를 연주하기가 매우 어렵다. 반주악기중 주로 주선율을 담당한다. 또한 관악기중 서양의 오보에와 같이 리드를 꼽아 사용하는 악기이다. 그래서 연주자의 기분에 따라 소리가 오르내리기가 쉽다.

이 피리에 옷을 입혀주는 역할을 하는 악기가 대금이다. 이 대금은 잣대 역할을 하는데, 대금의 구멍 여섯 개를 모두 막고 ‘임종’ 소리를 내면 거기에 맞춰 모든 악기들이 조율을 한다. 사람의 입이 리드 구실을 하는 대금은 그 소리가 매우 영롱하다. 이에 비해 피리의 소리는 투박한 편이다. 그러므로 피리 소리를 잡아주는, 피리 소리가 이끌어 나갈 때 피리소리를 가운데 두고 대금 소리는 위, 아래로 다니면서 피리 소리를 넘나든다. 피리 소리에 옷을 입히듯.

거문고와 가야금은 피리와 대금의 관계와 같다. 거문고는 낮은 음을 탁탁 치면서 베이스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장고가 없을 때 장단을 짚는 역할까지 하기도 하는 것이다. 거문고 소리는 기둥소리로서 ‘쿵-쿵-’울리면서 밑을 받혀준다. 이 밑을 받혀주는 저음이 매우 중요하다. 소리는 저, 중, 고가 잘 살아 있어야 하므로.

가야금은 거문고의 기둥 소리에 아름답게 수를 놓아주는 역할을 한다. 거문고 소리를 줄기에, 가야금 소리를 가지, 잎, 꽃에 비유할 수 있는데, 가지나 꽃이 줄기의 노릇을 할 수 없듯이 가야금은 거문고 소리를 잡아 먹으면 안 된다. 만약 가야금이 거문고 소리를 능가하여 “띵-띵-” 큰 소리로 울리면 줄기와 가지가 뒤바뀐 괴물같은 식물이 되는 꼴이다.

해금은 피리, 대금, 거문고, 가야금 들의 소리를 구석구석 누비면서 음이 빈 곳을 채워주는 풀(접착제)과 같은 존재이다. 노래의 선율과 가장 유사한 해금의 선율은 절대로 노래 소리를 잡아 먹으면 안 된다. 노래가 쭉 뻗어 나갈 때 노래의 배경 구실을 하면서 노래를 더욱 돋보이게 해야 하므로, 특히 가곡반주의 해금은 명석하고 맑은 소리를 내야 한다.

장고는 지휘자의 역할을 한다. 시각이 중시되는(지휘자의 동작과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는) 서양음악과는 달리 청각이 우선하는 우리음악은 장고의 소리를 들으면서 전체적으로 장단을 맞추게 된다. 장고 소리 역시 노래를 능가해서는 안 된다. ‘쿵’하는 '음'의 소리와 달리 ‘탁’하는 '양'의 소리는 노래를 잡아먹을 수 있으므로, 채편으로 복판을 치지 않고, 변죽을 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