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택과 전악사의 아양지계(峨洋之契)

2009. 4. 28. 04:36영송헌아카데미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그 속에서 함께 어울려 호흡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여유를 가져 왔습니다.
특별히 노래를 사랑하고 그에 대한 열정으로 <가집>을 엮어낸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공감하며 배울 점이 많은데, 여기 ‘풍류방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가집 속에 담겨진 독특하고 재미있는 사연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김천택과 전악사의 아양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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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집에 담아낸 노래와 사람들 ⓒ가곡전수관

<(진본)청구영언>을 만든 김천택은 전문 가객이라기보다 노래를 아주 좋아하는 선가자(善歌者)였습니다. 그의 본래 직업은 포도청의 포교였는데, 오늘날 서울 경찰청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포교는 ‘포도부장’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포도청에는 4명의 포도부장이 있었고, 그 아래 직책에 있는 포졸만도 90여명이나 되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위치였습니다.
이러한 김천택은 가곡을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 노래를 부를뿐더러 직접 노래 가사를 짓기도 했는데, <청구영언>에 그의 노래가 30수나 실려 있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천택은 전악사(全樂士)와 함께 ‘아양지계(峨洋之契)’를 맺고 자주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이 아양지계에서 김천택은 노래하고, 전악사는 거문고 반주를 맡았습니다. 전악사(‘전만제’라고 알려져 있음)는 당시의 장악원 악사였는데, 그가 포도부장 신분의 선가자(善歌者) 김천택과 함께 어울렸던 것입니다.

정내교(鄭來僑)라는 사람은 자신이 울적할 때 이들의 연주를 듣고 우울한 기분을 말끔히 씻고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하며, 아양지계의 음악수준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정내교라는 인물은 중인이지만, 사대부 자제들을 가르칠 만큼 학문 수준이 높은 학자였으며, 이 사람이 바로 아양지계(김천택과 전악사)의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렸다는 사람입니다.

정내교는 김천택이 만든 <청구영언>에 서문을 써주면서 아양지계의 감동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백함(김천택의 호)은 노래를 잘 부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신성(新聲)을 만들었고, 또 거문고를 잘 타는 전악사(全樂師)와 더불어 아양지계(峨洋之契)를 맺었다. 전악사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백함이 이에 맞추어 노래하면, 그 소리가 맑아서 가히 귀신을 감동시킬 만큼 밝고 화기로움이 드러났다. 두 사람의 기예는 한 시대의 묘절(妙絶)이라 일컬을 만하다. 내가 일찍이 우울하고 병이 들어 쓸쓸함을 달랠 즐거움이 없을 때면, 백함이 반드시 전악사와 같이 찾아와서 이 작품들을 취하여 노래를 불러 나로 하여금 한 번 듣고 그 아득하고 우울한 심정을 씻어내도록 하였다.”

<청구영언>이라는 가집을 통해 볼 때 서로 다른 신분의 사람들이 ‘예술’, ‘풍류’, ‘음악’ 안에서 계급이 사라지고 오직 예술적 취향으로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포용력이 있었기에 김천택과 전악사의 아양지계가 맺어져 마음을 다스리는 평화로운 음악을 탄생시켰다고 하겠습니다.



* 위 글은 <가집에 담아낸 노래와 사람들 - 조순자/보고사/2006>의 내용 중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