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47년간 불러온 '수양의 노래'

2009. 4. 24. 12:36언론에 비친 가곡전수관

[토종문화] (7)가곡 예능보유자 조순자씨 
47년간 불러온 '수양의 노래'
 우리 소리 지켜온 꿋꿋한 '명창의 길'

 “북두칠성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섯 여섯 일곱분께~ ~ 그리던~ 님~을 만나~”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조순자(62) 명인. 마산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마침 영송당가곡보존회 울산지회 설립 기념 공연을 앞두고 제자 2명과 함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유연하게 이어가는 아름다운 소리가 장구 장단과 함께 그윽하게 들려온다.

단아하고 온화한 모습은 한길을 걸어 온 예술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대구에서 온 제자 구본삼(대구 경서중 교사)씨는 한국 교원대 대학원 과정에서 선생님을 만났다고 한다. 5년간 가곡을 공부하고 있다. 또 한 명은 아주 앳된 얼굴이다. 부산 당리중학교 1학년 이유나 학생인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조창을 하다가 우연히 가곡을 접하게 됐고. 그 소리에 매료되어 역시 5년째 가곡을 배우고 있다.

  “버들은~. 안보고 할 수 있죠. 자 불러봅시다.”
 한가락 한가락 넘어갈 때마다 눈을 지긋이 감고 음을 따라간다. 그리고 선율에 따라 지휘하듯 손 장단을 한다. 마치 무용수의 춤사위를 보는 것 같다.  “시각적으로 선율의 흐름을 보여주면서 가르치면 빨리 알아들을 수 있어 손장단을 하는 거지요.” 옛날부터 전해져 왔던 교수법이라고 한다.
 
조 명인은 14살 때부터 가곡을 공부했다. 1958년 KBS 국악연구생 2기로 들어가 최고의 명인명창들에게 여러 분야를 두루 배웠다. 제일 먼저 가곡을 배우고 그 다음에 판소리도 하고 민요도 부르고 또 악기도 하고 춤도 배웠다. 가곡에는 우리나라 말의 발음법. 호흡법. 그리고 가장 편안한 발성법이 무엇인가를 기본적으로 알게 해주는 요소들이 들어 있어 당시에는 누구나 기초적으로 다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너무 느려서 싫었어요. 그런데 열심히 하다 보니까 자꾸 뽑혀 나가서 독창도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가곡이 좋아지더군요.”  조 명인의 스승은 소남 이주환 선생. 그리고 이난향·홍원기 선생에게도 찾아가 배웠다.
 “이주환 선생님은 매우 엄격하게 가르쳤어요. 부동자세로 앉아 꼼짝 않고 손장단을 하며 노래를 불러야 했어요.”
 
1964년 국립국악원이 생기고 처음으로 해외공연을 갔을 때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교수법을 따르지 않고 다른 분이 가르쳐 준 창법으로 노래를 부른 것이 화근이었다. 22살 때라 아직 목이 잡히기도 전이었다. “‘목도 잡히기 전에 겉멋부터 배워 목 망치려고 그러느냐’ 하시면서 무릎을 꿇어 앉히고 얼마나 꾸중을 하던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조 명인은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2001년에 문화재로 지정됐다. 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0년. 마산이 고향인 남편을 만나 시댁에서 살림을 차리게 된 것. 그는 “벌써 35년이 흘러 이제는 마산 토박이가 되었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조 명인은 가곡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느낀다. “특히 인간이 어떻게 하면 마음이 넓어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선생이기도 합니다”라면서 태풍 매미가 왔을 때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당시 혼자 집에 있으면서 무서웠는데 정좌를 하고 이삭대엽 ‘버들은’을 계속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안정되더라는 것. “제가 가곡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이 음악 속에는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습니다. 옹색한 마음도 이 노래를 부르면 굉장히 편안해지고 넓어져요.” 가곡 ‘버들은’은 43자의 가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연주 시간은 약 11분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자당 약 15초. “이삭대엽 계열은 1분 이상 숨을 안쉬고 길게 빼어내는 연주가 많습니다.” 발성뿐만 아니라 호흡법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연습을 해야만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가곡을 ‘수양의 노래’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조 명인은 최근 19세기 조선 최고의 가객이었던 안민영의 ‘매화사’를 초연했다. 지금껏 선율을 잃어버린 채 가집 속에 잠들어 있던 기나긴 침묵을 깨고 아름다운 노래로 재현. 호평을 받았다. 또한 많은 해외공연과 국내공연. 음반작업과 저술을 통해 가곡의 아름다움을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특히 2002년 프랑스 공연 때는 “숨을 안쉬고 길게 내뱉으면서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올 수 있나”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남명 조식 선생의 시조 ‘삼동에 베옷 입고’. ‘두류산 양단수’를 많이 전파해 “남명 선생을 알리는데도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상도지방의 특징적인 문화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 가곡이다면서 “마산이 가곡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는 이경원. 이정희. 권순자씨 등 3명이고. 전수 장학생은 신혜선. 권민영씨 등 2명이다. 조 명인은 “이제는 전수조교가 있어야 될 시기인데 이수자들이 생업 때문에 문화재에 도전할 여력이 안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조 명인은 음악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배우고자 오는 사람은 돌려보낸다고 한다. 단지 무대에 서기 위해 음악을 배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우리 민족이 현명하고 우수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먼저 교사들을 가르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래야 그 교사들이 제자들에게 우리 음악을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확산된다는 것이다.

“다른 성악분야와 달리 가곡은 독특한 발음. 발성. 호흡 등의 당위성을 이해해야만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는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시어와 음악구조의 절묘한 만남. 그를 통한 고매한 정신세계의 확립을 추구한 가곡의 음악세계는 노래 부르는 이들의 부단한 탐구정신을 필요로 하죠. 노랫말과 선율의 흐름을 이해해야만 가곡의 진정한 연주와 이해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래를 음악적으로 수련하는 일 못지않게 문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가곡이 신라향가와 고려가요에서부터 전해져 왔다”면서 원류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우리나라 말을 바탕으로 음의 높이와 길이를 엮어서 표현한 노래들이라 옥보고 시대의 신라 음악이나 고려가요도 결국 어느 일정한 중요부분은 같다라는 것이다.
가곡과 비슷한 중국의 ‘남음음악’. 일본의 ‘사이바라’도 우리나라에서 전파됐다고 주장했다. 다른 점은 중국은 우리나라 악단처럼 인기가 높고. 일본은 황실음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면서 “정작 원류인 한국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곡 전수관을 우여곡절 끝에 마산에 짓고 있는데 “너무 좁아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걱정했다.
 
“우리 조상들의 예술적인 문화유산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는 조 명인은 “음악(가곡)을 통해 전세계에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leejh@knnews.co.kr 


<가곡이란> 
가곡(歌曲)은 고려가요인 진작(眞勺·鄭瓜亭曲)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조선조 초기에는 현재의 삭대엽(數大葉) 외에 중대엽(中大葉)과 만대엽(慢大葉)이 더 있었는데. 이들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의 만·중·삭은 곡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로. 만(慢)은 제일 느린 것. 중(中)은 중간 빠르기. 삭(數)은 가장 빠른 곡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들 중 만대엽과 중대엽은 사라지고 삭대엽만 남게 되는데 17세기 후반부터 1. 2. 3. 4의 파생곡을 만들어 냈고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크게 성행했다. 19세기에는 농·락·편의 새로운 파생곡의 형태까지 만들어 내어 오늘날의 가곡 형태를 갖추게 됐다.
  ‘가곡(歌曲)’과 ‘시조(時調)’는 같은 노랫말을 사용하는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적인 형식과 장단. 음계. 연주 형태 등에 있어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시조는 또한 다른 노래보다 쉽게 배울 수 있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음악인 반면에. 가곡은 오랜 훈련을 쌓아 올려야 하는 전문가의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