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6. 18:03ㆍ풍류방이야기
안녕하세요. 가곡전수관입니다.
지난 2024년 7월 11월 목요일 저녁 7시30분엔 7월 상설공연 풍류방음악회 '율객(律客)'의 무대가 열렸습니다.
이번 공연의 제목인 율객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볼까요?
율객 律客
1.명사_ 음률에 밝은 사람.
2.명사 _한시(漢詩)의 율을 잘 짓는 사람.
이번 공연엔 현악기인 가야금 서은주 단원과 거문고 이임민 단원 그리고 장구장단 정동주 단원 3명이서 무대를 꽉 채워주웠습니다. 어김없이 영송당 조순자 선생님의 인사말과 해설로 오늘 공연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번 공연의 첫무대는 영산회상 중 세령산부터 하현도드리까지를 들어보았습니다.
<영산회상>은 오늘날 전승되는 풍류음악의 대표적인 기악곡입니다. <영산회상>의 본래 의미는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인 라자그리하(王舍城)에 있는 석가여래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할 때의 모임을 뜻합니다. 이를 통해 <영산회상>이 본래 불교와 관련된 음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산회상>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연주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본격적인 모습은 조선 초기의 여러 문헌들을 통해 확인됩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1493) 권의 「시용향악정재도설(時用鄕樂呈才圖說)」에 따르면 <영산회상>은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을 연행할 때,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이라는 가사가 있는 성악곡으로 불렸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조대의 음악을 실은 『대악후보(大樂後譜)』에도 '영산회상불보살'의 가사와 함께 선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성현(成俔)이 지은 『용재총화(慵齋叢話)』(1525) 권1에도 여기妓)들이 원을 그리고 빙빙 돌면서 대열을 갖추며 '영산회상불보살'을 제창하였는데, “마치 승려들의 공불(供佛)을 모방한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로 볼 때 조선 초기 영산회상은 성악곡으로 무용과 함께 불렸으며, 불교적 색채가 강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영산회상>은 성악곡에서 기악곡으로 변화하였습니다. 먼저, ‘영산회상불보살'이라는 가사가 중종(1506~1544) 때 '수만년사'(壽萬年詞)로 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가사가 사라진 순수 기악곡으로 연주되었는데, 기악곡화된 최초의 <영산회상>은 『현금신증가령(玄琴新證假令)』(1680)에 거문고보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영산회상>의 기악화는 궁중에서 민간으로 <영산회상>의 향유 공간이 확대되면서 생겨난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즉, 풍류방에서 중인이나 선비계층이 <영산회상>을 애탄(彈)하면서 그것을 자신들의 심미적 요구에 적합하도록 음악적 변화를 추구한 것입니다.
기악화된 이래 <영산회상>의 음악적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그 결과 〈상령산>에서 여러 파생곡들이 출현하게 됩니다. 〈상령산〉을 높게 변주한 <중령산>, 본래 20박이던 <중령산>을 10박으로 빠르게 변주한 〈세령산〉, 〈세령산>의 잔 가락들을 덜어 낸 <가락덜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6박으로 된 〈상현도드리〉와 이보다 음역이 낮은 <하현도드리>가 파생되고, 이후 풍류방에 여러 민속악 전문가들이 참여하면서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이 추가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를 통해 <영산회상>은 느린 20박의 <상령산>으로부터 점점 한배가 빨라지는 구조의 모음곡이 되었습니다.
오늘 연주는 가야금과 거문고가 병주로 세령산, 가락덜이, 삼현도드리, 하현도드리를 연주하였습니다.
두번째 무대는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와 한갑득류 거문고산조를 기본으로 두 율객이 풀어내는 허튼가락, 산조 연주 무대입니다.
‘산조(散調)’는 민속음악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기악 독주 형식으로, 연주자의 뛰어난 기량과 독창적인 해석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예술음악이며, 흔히 민속 기악의 꽃이라 불립니다. 산조는 선율 악기 연주자가 장구나 북 장단을 곁들여 5~6개의 장단으로 구성된 악장을 약 50여분 내외의 긴 시간 동안 연주하는데,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하여 점차 빠르게 진행됩니다. 기본적인 장단 구성으로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입니다. 이 밖에 악기별, 유파별로 굿거리, 엇모리, 단모리, 세산조시 등의 장단이 추가되거나 특정 장단의 속도를 변화시켜 ‘늦은 중중모리-중중모리’, ‘늦은 자진모리-자진모리’ 등으로 세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산조의 선율은 한국음악의 기본적인 음계인 우조와 계면조 외에 선율 단락 안에서 변조를 하여 다른 갈래에서 볼 수 없는 다채로운 음악성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 악기 특유의 연주기법을 활용하여 빗소리, 말발굽소리, 새 울음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묘하는 악구도 있습니다. 몇몇의 뛰어난 산조 명인들은 기본적인 조와 장단, 선율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살린 즉흥적인 연주 해석을 통해 연주 중에 새로운 가락을 짜 넣기도 합니다.
흔히 산조를 ‘즉흥적인 기악 독주곡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산조는 19세기 말 김창조(金昌祖)의 가야금산조(伽倻琴散調)를 효시로, 거문고산조[玄琴散調]·대금산조(大琴散調)·해금산조(奚琴散調) 그리고 1950년경 아쟁산조(牙箏散調)의 순으로 발생하였습니다. 따라서, 가야금산조가 가장 많이 연주되며 바디[流:스승이 짜서 내려준 바탕]도 가장 많습니다. 그 밖에 호적이나 퉁소는 시나위가락을 연주하기도 하지만 산조를 연주하는 일은 거의 없고, 양금 같이 시김을 표현할 수 없는 악기는 원칙적으로 산조의 가락을 연주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전해지는 산조 명인의 최고인(最古人)으로는 김창조가 있는데, 그는 19세 때(1883) 가야금산조를 처음 창제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틀이 잡히기 전의 유사한 산조는 김창조 이전에도 있었고, 김창조는 산조의 틀을 짜서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문고산조는 백낙준에 의하여 1896년 처음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대금산조는 박종기(朴鍾基)가, 해금산조는 지용구가, 피리산조는 최응래(崔應來)가 가장 옛 명인으로 전합니다. 또한, 아쟁산조는 8·15광복 후 한일섭(韓一燮)이 짠 것입니다. 거문고산조·가야금산조 및 병창·대금산조가 각각 1967년, 1968년, 1971년에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전승,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야금 서은주 단원과 거문고 이임민 단원, 장단에 정동주 단원이 꾸며주었던 7월 목요풍류 '풍류방음악회_율객(律客) 무대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우리 현악단원들이 꾸며주웠던 멋진 무대 어떤가요? 사진으로만 보아서는 잘 안느껴지시죠? 그런분들을 위해 가곡전수관 유튜브 채널에서 공연을 다시보기 가능하니 많은 시청과 좋아요, 구독 부탁드립니다.
아래 그림을 누르면 가곡전수관 유튜브 채널로 바로 연결되니 많은 시청과 격려,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럼 우리 8월 공연때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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