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4. 12:30ㆍ사랑방이야기
'유장미의 극치' 노랫말 43글자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구십 삼춘(三春)에 보내느니 나의 시름/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던고?”
43글자의 이 평시조 노랫말을, 반복 하나 없이 무려 11분에 걸쳐 부른다면? 중요무형문화재 30호 가곡 기능보유자 조순자가 부르는 ‘우조(羽調) 이수대엽(二數大葉)’은 그런 노래다. 전주·간주 빼고 노래만 9분이고, 특히 ‘누구서’ 3글자를 1분 이상 부르는데 맨 마지막 ‘-서’ 한 글자만 40초를 끈다. 이른바 ‘정악(正樂)’으로 분류되는 음악들의 맛으로 흔히 유장(悠長)함을 드는데, 유장미의 극치가 가곡 중 바로 이 이수대엽이다. 가곡이라니까 오히려 홍난파·김성태 등 근대 작곡가들의 우리말 노래들을 먼저 떠올릴 법한데, 둘을 ‘전통가곡’ ‘근대가곡’이라 구별해 부르는 것도 좋겠다.
자, 43글자를 무려 11분에 부른다니, 다음의 97글자 노랫말을 다 부르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모란은 화중왕(花中王)이요 향일화(向日花)는 충신이로다/연화(蓮花)는 군자요 행화(杏花) 소인이라 국화는 은일사(隱逸士)요 매화 한사(寒士)로다/박꽃은 노인이요 석죽화(石竹花)는 소년이라 규화(葵花) 무당이요 해당화는 창녀로다/이 중에 이화(梨花) 시객(詩客)이요 홍도(紅桃) 벽도(碧桃) 삼색도(三色挑)는 풍류랑(風流郞)인가 하노라.”
꽃 얘기로 일관해 속칭 ‘화편(花編)’이라고도 하는 이 기다란 가곡, ‘계면(界面) 편수대엽(篇數大葉)’을 노래부르는 시간은 뜻밖에 겨우 3분 20초로, 앞의 짧은 노래의 3분의1도 안된다. 여창가곡 한바탕은 이렇게, 아주 느린 이수대엽부터 사뭇 빠른 편수대엽까지 점점 속도를 더해가는 구조로 돼있다.
가곡의 노랫말은 첫 귀에 알아듣기 힘들다. 한자어 투성이에다 길게 늘여부르기도 하지만, ‘애’ ‘에’ ‘외’ 등 훈민정음 당시 이중모음이던 것들을 옛 그대로 ‘아이’ ‘어이’ ‘오이’처럼 나누어 발음하기 때문이다. 참고=‘조순자 여창가곡 전집’(신나라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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