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풍류] 국가무형문화재 '가곡' 기획행사_ 2019 기억의 목소리

2019. 5. 18. 15:34풍류방이야기

 

안녕하세요. 5월은 근원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개인의 가장 근원이 되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은혜, 그리고 올바름의 삶을 알려주신 스승님의 은혜를 이 푸르른 신록의 계절에 다시금 되돌아 기억하고 그 고마움을 기리는 뜻의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2019 기억의 목소리'라는 타이틀로 귀중한 문화유산을 전해주신 국가 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의 은사님들을 기리는 공연을 지난 5월 16일(목) 19:30에 가곡전수관 영송헌에서 공연하였습니다.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가곡'의 초대 보유자이시며, 영송당 조순자선생님의 첫 스승님이신 소남 이주환 선생님의 삶과 노래 이야기 그리고 금하 하규일 선생님의 으뜬 여제자이시며, 영송당 선생님의 두번째 스승님 이난향 선생님의 남창과 여창의 차이와 노래하는 법과 삶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천리길을 오가시며 정악가야금, 가곡, 가사, 시조의 진수를 살뜰히 알려주신 영송당선생님의 세번째 스승님 청운 홍원기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야기와 연주로 이번 무대를 준비하였습니다.

 

 

 

기억의 목소리 하나_소남 이주환(1909~1972)

 

소남 이주환은 서울에서 태어나 이왕직아악부 3기생으로 입소하였습니다. 김영제·함화진·최순영 문하에서 아악을 배웠으며, 원래 전공은 피리였으나 하규일에게 가곡, 가사, 시조를 전수받아 일가를 이루어 20세기 중반 정가 전승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1951년 국립국악원 개원과 더불어 초대 원장에 임명되었으며, 국악사양성소장을 겸임하는 등 정가 전승 외에 국악행정 및 교육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1969년에는 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 1971년에는 가사 예능보유자로 추가 지정되었던 그는 정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삶 자체가 정가와 같았던 이주환에 얽힌 일화와 연주로 그를 다시 추억해 봅니다. 

 

 

 

 

기억의 목소리 두이_이난향 (1900 ~ 1979)

 

이난향은 평양 태생으로 13살에 서울로 와 조선권번에 입적하였습니다. 그는 하규일로부터 가무악일체를 배웠으며 하규일의 수제자로서 가장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난향은 모든 노래를 두루 잘 불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잔노래와 가사(歌辭)가 장기였습니다. 그가 부르는 가사(歌辭)는 전달이 분명하고, 명쾌한 시김으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틈날 때마다 하규일에게 노래를 배우며 연달아 노래 네 바탕을 배웠을 만큼 가곡 수련에 열성적이었던 이난향선생님의 노래 인생을 영송당가곡보존회와 국악연주단 정음의 연주로 다시 만나봅니다.

 

 

 

 

기억의 목소리 서이_청운 홍원기(1922 ~ 1997)

 

이왕직아악부 5기생으로 입소한 청운 홍원기는 전공은 가야금이었으나 아악부의 이병성, 이주환과 민간에서 활동한 최상욱에게 가곡, 가사, 시조 등의 정가를 배웠고 이중 정가에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1960년부터 민속악 중심의 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유일한 정악교사로 국악개론과 시조창을 맡아 가르치는 등 후학양성에 힘썼으며, 1975년 가곡 예능보유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가곡의 전승·보급을 위해 만든 〈한국전통가곡진흥원〉은 현재 제자들에 의해 그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악연주단 정음의 연주로 홍원기의 삶과 노래를 만나봅니다.

 

 

 

 

 

근대 가곡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소남 이주환, 이난향, 청운 홍원기 세 분의 선생님들의 우리가 잘 몰랐던 숨은 이야기들 부터 영송당 조순자 선생님께서 그동안 세분의 선생님들께 가르침을 받으시며 있었던 애피소드 등을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공연되어 2시간여의 시간이 금세 흘러가는 뜻깊은 자리 였습니다.

 

 

첫번째 무대는 신용호 가객의 <가곡 남창 우조 초삭대엽 ‘동창이’> 였습니다.

 

初章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貳章   노고지리 우지진다

參章   소치는 아희 놈은 상긔 아니 일었느냐

四章   재 너머

五章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허느니

 

초삭대엽은 가곡의 ‘첫째 곡’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창이’는 소박한 농촌의 삶을 묘사한 숙종조 남구만(1629~1711)의 시로, 가곡 남창 우조 초삭대엽 가운데 가장 널리 불리는 곡 중 하나입니다.

 

두번째 무대는 이난향 선생님의 이야기와 함께 <가곡 여창 반우반계 환계락 ‘사랑을’> 영송당 조순자선생님, 조수연, 김나령, 이유나 김참이 가인의 노래로 공연되었습니다.

 

初章   사랑을 찬찬 얽동혀 뒤걸머지고

貳章   태산준령을 허위허위 넘어가니

參章   모르는 벗님네는 그만하여 바리고 가라하건 마는

四章   가다가

五章   자질려 죽을센정 나는 아니 바리고 갈까 하노라

 

환계락(還界樂)은 남창가곡에는 없고 여창가곡에만 부르는데 우조인 우락에 계면조인 계락으로 연결될 때 조바꿈을 원활히 하기 위한 곡으로 우조로 시작하여 곡 중간에 계면조로 바뀌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노래입니다.

 

 

세번째곡은  청운 홍원기 선생님의 이야기와 함께  정하린 연주단원의 <정악가야금  독주 가즌회상 중 '천년만세'>가 연주되었습니다.

 

천년만세란 ‘아주 오랜 시간’을 뜻하는 것으로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영산회상과 함께 조선시대 선비들에 의해 사랑방에서 주로 연주되던 풍류음악입니다. 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우조가락도드리 등 세 개 악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으로 한배가 느린 첫 곡에 이어 매우 빠른 한배의 양청도드리가 연주되고 마지막 곡에서 다시 느려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양청도드리는 풍류음악 가운데 속도가 가장 바른 편이고, 옥타브 관계에 있는 거문고의 두 음(이것을 ‘양청’이라고 한다.)을 번갈아 연주하면서 선율을 변주하여 흥을 돋웁니다. 영산회상 전곡을 연주할 때 제일 뒤에 덧붙여 연주하기도 합니다.

 

 

네번째곡은 <가사 '백구사'>를 이유나, 김참이, 변혜영 가인의 노래로 들어보았습니다.

 

나지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성상이 버리시니 너를 좇아 예 왔노라

오류춘광 경 좋은데 백마금편 화류 가자

운침벽계 화홍 유록한데 만학천봉 빛은 새뤄 호중천지별건곤이 여기로다

고봉만장 청기울한데 녹죽창송은 높기를 다퉈 명사십리에 해당화만 다퓌여서

모진 광풍을 견디지 못하여 뚝뚝 떨어져서 아주 펄펄 날아 나니 귄들 아니 경 일러냐

 

‘백구야 펄펄 나지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로 시작한다고 하여 붙여진 곡명으로 백구가(白鷗歌)라고도 합니다. 백구는 갈매기로 판소리의 단가나 민요에 자주 등장하는 아주 친숙한 소재의 하나인데 백구사는 백구를 소재로 하여 자연에 묻혀 속세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을 노래한 곡입니다. 백구사는 작자미상이라고 하나 정조때 세도가였던 홍국영이 지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가 후에 강릉으로 추방당하여 이곳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지었다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곡은 김참이 가인의 노래로 <우조시조 '월정명'>을 들어보았습니다.

 

初章   월정명 월정명커늘 배를 저어 추강에 나니

中章   물아래 하늘이요 하늘가운데 명월이라

終章   선동아 잠긴 달 건져라 완월하게

 

우조시조는 가곡의 우조 악곡풍의 가락을 시조에 섞어 부르는 시조입니다. 이는 20세기 전반기 임기준, 이문언, 최상욱 등에 의하여 전창 되었습니다. 주로 서울 우대, 즉 인왕산 기슭의 유각골(현재의 종로구 누상동, 누하동 일대)가객들 사이에서 즐겨 불리던 곡입니다. 다른 시조에 비하여 5음 음계의 각 구성음이 고르게 활용되는 노래입니다.

 

 

 

여섯번째곡은 <가곡 여창 계면.우.계면조 '장진주'>를 김나령, 이유나, 김참이, 변혜영, 제민이 가인의 노래로 들어보았습니다.

 

初章   한잔 먹사이다

貳章   또 한잔 먹사이다

參章   꽃 것거 주(籌)를 놓고 무진무진 먹사이다. 이 몸 죽은후에 지게 우에 거적 덮어 주푸루혀 메여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백복시마(百服緦麻) 울어예나  어욱새 더욱새며 덕게나무 백양(白楊)숲에 가기 곧 기량이면

           누른 해 흰 달과 굵은 눈 가는 비며 소소(簫簫)리 바람불제  뉘 한잔 먹자하리

四章   하물며

五章   무덤 우에 잔나비 파람 헐제 뉘우친들 미치랴.

 

술 한잔 먹자구나. 또 한잔 먹자구나 그려 꽃 꺾어서 산가치를 놓고서 무지무진 무진장 먹자구나.

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 지게 위에 거적 덮어서 동여 매여 가거나 오색 구슬이 달린 상여에다 백일상복에 사람이 울며 따라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나무 숲 속에 죽어 가게만 되는 날에는 석양녘에나 달 밝은 밤에나 진눈깨비 눈이 노는 날이나

가랑비가 오는 날에나 음산한 바람이 불 때 그 누가 술한잔 먹자고 하리요,

하물며 무덤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제 그 누가 후회한들 뉘우치리오, 이미 때는 늦으리로다.

 

 

 

마지막곡으로 출연자 전원의 <가곡 남.여창 계면조 대받침 '태평가'>를 연주했습니다.

 

初章   이랴도 태평성대(太平聖代)

貳章   저랴도 성대(聖代)로다

參章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

四章   우리도

五章   태평성대니 놀고 놀려 하노라

 

태평가는 가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으로 요순시절과 같은 태평성대를 누려보자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태평가는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며 만년을 지낸 명종 때 성수침(1493~1564)의 작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태평가의 곡명은 “이려도 태평성대 저려도 태평성대”라고 하는 가사에서 따왔습니다. 태평가는 가곡 중 유일하게 남녀가 함께 부르는 곡으로, 남녀창 선율의 대비와 조화가 특징적입니다.

 

 

가곡전수관 공연을 한번이라도 보신 분들은 다 알고 계실 "느닷없는 행복" 추첨이 이번 공연에도 어김없이 있었습니다.

이번 공연에 관객으로 참석해주신 이동복교수님께서 까까머리 시절 영송당 조순자 선생님과의 첫만남 이야기 부터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들과 함께 첫번째 느닷없는 행복 주인공을 뽑아 주셨습니다. 천리길 진주에서 오신 두 친구분과 영송헌아카데미 일반인강좌 수강생 두분에게 느닷없는 행복이 돌아갔답니다.

 

 

영송당 조순자 선생님의 재미난 해설과 이주환선생님, 이난향 선생님, 홍원기 선생님의 이야기로 시간 가는지 모르고 들었던 '2019 기억의 목소리' 공연이 성황리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영송당 조순자 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소원 '청출어람(靑出於藍)' !! 

앞으로 저희들도 선생님의 깊은 가르침과 뜻을 받아 노래하며 청출어람이 될 수 있는 그날까지 더 열심히 노력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는 뜻 깊은 공연이었습니다.

영송당 선생님 항상 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과 정신을 이어가기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푸른 5월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기획행사 <2019 기억의 목소리> 공연에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더 다양하고 좋은 공연으로 6월 13일에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