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탄] 노래의 '맛' 살리기

2009. 4. 14. 16:57왕초보 노래배우기


선생님은 가곡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맨 처음 가르치시는 곡이 평조 이삭대엽 <버들은>이다. 더러 다른 분들은 빠른 곡, <모시를>을 맨 먼저 가르치시기도 한단다. 선생님께서 <버들은>은 먼저 공부시키는 이유는 <버들은>이 가곡의 기본 선율을 두루 지니고 있으며, 무엇보다 발성의 기본이 되는 호흡을 늘리기 위해서라 하셨다.


호흡이 늘어 건강에도 좋아


<버들은>은 많이 부르면 호흡이 늘어 노래도 잘 할 수 있고, 건강에도 좋단다. 그래서 노래를 공부하는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버들은>을 불러야 한단다. 노래 공부하시는 분들, 모두 알고 계시죠? 그리고 선생님 말씀이 긴 노래를 부르다 소리를 덜어내는 짧은 노래를 부르기는 쉬워도, 짧은 노래를 부르다 그것을 늘이는 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어렵단다. 실제로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5월 13일 노래수업은 <버들은>을 부르면서 시작했다. 배불리 먹은 저녁 때문인지 길게 소리를 내는 데 음식물이 막 기어 올라올 것만 같았다. 트림도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입을 꼭 다물고 선생님과 한 목소리가 되어 노래하는 李와 申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모두 식후여서지 4장에 ‘어----’를 10박에 걸쳐 뽑는 대목에서 선생님의 목소리만 돌올하게 들려왔다. 모두 바람 새는 소리만....

이번에 새로 배울 노래는 반엽 <남하여>이다. 이 노래는 선율은 <일각이>이와 똑같지만 그 맛이 사뭇 다르다. 나처럼 귀가 어두운 사람은 같은 선율인지도 몰랐다.

“선율은 같지만 느낌은 다르죠?”

라고 선생님이 물으셨을 때, “같아요?”라고 뜬금없는 소리를 내질렀으니까.
같이 공부하는 申이 “어 정말로 다르네요!”라며 찬탄을 보내며, “‘<일각이>와 <남하여>가 같으니까 <일각이>만 하고, <남하여>는 하지마요.’라고 말씀드리려고 했어요.”라고 덧붙였다. 내가 다르다고 느끼는 것과 申이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진짜 천양지차일 것이다. 나는 같은 선율인 줄 인식 못해서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고, 申은 두 노래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서 다르다고 한 것이다.


고도의 내숭이 절제되어 나타난 <남하여>

남하여 편지 전치 말고 당신이 제오되어
남이 남의 일을 못 일과져 하랴마는
남하여 전한 편지니 일동말동 하여라


남으로 하여금 편지를 전하게 하지 말고 당신이 우체부가 되시어
(편지가지고 직접 오세요)
남이 딴 사람의 일을 못 이루어지게 하랴마는
(남이 나더러 편지를 읽지 말기를 바랐겠는가마는)
남으로 하여금 전하게 한 편지니 읽을동말동 하여라
(남이 전한 편지라 읽을지 말지...)

사랑하는 연인을 향해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시이다. 노랫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은 바로 ‘당신이 제오되어’이다. 시인은 당신이 간절히 보고 싶음을 ‘당신이 우편배달부가 되어’라고 에둘러 말한다. ‘편지질 그만하고 만나러 와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속마음이다. 그런데 와락 대들 듯 말하지 않고 ‘제오되어’ 오라 한다. 깜찍하게스리...(우리 생각에는 그게 그것 같지만 사실 이건 속되게 표현하면 고도의 내숭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를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당신이’를 부르는 대목이란다. ‘당-시-니’처럼 연음으로 발음하면 노래의 맛이 살질 않는다. ‘당신’이라는 낱말이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당-신-이’로 불러야 한다. 바로 너, 내가 사랑하는 내 님, 내 당신을 콕 집어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2인칭 당신, 너로서의 의미와 다르다. 사실 우리말 발음상 ‘당신이’는 ‘당시니’로 소리내야 한다. 그런데 이 노래에선 그리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이제까지 이 노래를 불렀던 많은 가인들도 '당시니'로 부르셨단다.


 ‘동글동글, 콕콕 찍듯이’ 소리내야

3장의 ‘남이 남의 일’의 경우도 앞의 ‘남이’는 이어서 부르고, ‘남의’은 ‘남’은 ‘나-’를 약간 늘인 후 ‘ㅁ’을 붙인다. 앞의 ‘남’과 뒤의 ‘남’이 의미가 다르므로 그 발음을 달리하는 것이다. 앞의 ‘남’은 나에게 제3자인 사람이고, 뒤의 ‘남’은 그에게 제3자인 타인인 것이다. 그러니 달리 말을 붙이는 데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장사훈 선생님) 가곡에서 가사가 선율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영송당 선생님은 무엇보다 노래는 가사가 으뜸이라 하신다. 나도 선생님의 말씀에 동감이다. 그런데 우리 중 서양 대중음악에 관심이 많은 李가 반론을 제기했다.

“서양에선 음악가는 메신저가 아니라며 점점 가사보다는 사운드가 더 중요시하는대요.”
“그건 그들의 추세이지요. 그 추세를 다 따를 이유가 없어요.”


선생님의 일축! 이어지는 선생님의 또 한 방!

“노래에서 가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예가 있어요. 구음이에요. 구음과 노래가 다른 점은 바로 노래의 가사지요.”

라고 말씀하시고는 구음을 들려주셨다. 우리 모두 끄덕끄덕.

‘당신이’도 그러하지만 이 노래는 처음의 ‘남하여’부터 모든 가사들을 선생님 표현에 의하면 ‘동글동글, 콕콕 찍듯이’ 소리내야 한단다. 혀를 부지런히 움직이고, 복근과 괄약근을 부지런히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소리를 단단하고 찰지게 내는 것이 이 노래의 제 맛을 살리는 거란다.

요점 1) ‘남하여’의 남림을 소리낼 때 목으로 ‘억-억억’혹은 ‘꺼-꺼걱’하듯 소리내지 말고 배로(과장되게 표현하면-복근을 움직여 긴장을 풀었다 조였다 하여) 소리를 내야 한다.
요점 2) 2장의 ‘제오되어’를 부를 때, ‘도’소리를 낸 다음 ‘ㅣ’소리가 팍 올라가서 힘이 팍 들어가니까 마치 들리기는 ‘저-ㅣ-오-도-(ㅎ)-ㅣ’처럼 들리도록 ‘도’와 ‘ㅣ’를 강하게 소리내야 한다. 그렇다고 ‘도-히-이’라고 소리내면 안 된다.

요점 3) 3장의 ‘못일과져’도 ‘모딜과져’라고 발음하면 안 된다. 소리가 하나하나 살아나게 ‘모-ㄷ-일-과-져’로 발음해야 한다.

글쓴이 : 왕초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