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藝 그리고 만남_가곡 예능보유자 조순자씨와 가곡 이수자 이경원씨

2014. 5. 21. 15:24언론에 비친 가곡전수관

2014년 5월 21일     기사 입니다.

 

 

[藝 그리고 만남]

가곡 예능보유자 조순자씨와 가곡 이수자 이경원씨

 

스승과 제자로 만나 ‘가곡의 길 40년’ 함께 걸었죠

 

藝 그리고 만남 ⑭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조순자씨와 가곡 이수자 이경원씨

 

 

 

 

조순자(왼쪽) 마산 가곡전수관 관장과 이경원 마산 세종국악회관 관장이 함께 가야금을 뜯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두 사제가 악보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청출어람’. 스승이 바라는 제자의 모습이다.

푸른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순자(마산 가곡전수관 관장)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와 그의 제자인 이경원(마산 세종국악회관 관장) 가곡 이수자는 ‘청출어람’을 위해 함께 뛰고 있다.

“제자를 키우는 게 내가 크는 것이며, 그런 마음은 자식보다 더합니다. 그리고 내 기능을 더한 제자가 있는 게 보물입니다.”

“올곧게 한길만 걸어온 선생님의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제자란 게 자랑스럽고, 더욱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마산 가곡전수관에서 만난 두 예술인은 손을 꼭 잡고 사제간의 정을 나누었다.


◆사제의 정 40여년

두 사제간의 인연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관장이 마산교육대학에 출강, 국악을 가르치고 있을 때이다. 당시 국악교육에 대한 문제점이 많이 대두되면서 국악교육연구회 경남지부가 처음 생겼고, 조 관장이 지부장을 맡아 교사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직에 계신 경원이의 어머니가 저에게 가야금을 배웠는데 어머니를 따라오면서 제 무릎에 앉아 자연스럽게 가야금과 친해졌죠. 그때가 6살 때였는데, 소질이 있었습니다.”

조 관장은 40여년 전 이 관장을 처음 만난 때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성음(치는 소리)이 예쁘고 리듬감이 있어 타악 방면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길을 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이끌었다.

“선생님은 항상 최고의 스승에게 배울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셨고, 어떤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시험대에 설 때마다 항상 저의 곁을 지켜줬습니다.”

이 관장은 조 관장의 배려로 대학시절에는 사재성 선생님한테 장단을 배웠고 대학원 때는 김호성 선생님한테 가사를 배웠다고 한다.

대학 입시 시험 치러 갈 때는 사제간 함께 떨기도 했다. 조 관장이 반주를 하고 이 관장이 가곡을 불렀는데, 조 관장도 애타는 마음에 노래를 속으로 불러 목이 메기까지 했다. 이 관장의 대학 졸업연주회 때도 스승은 옆에 있었다. 아니 무대 뒤에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둘은 따뜻한 포옹을 했다.

첫 독창회 때도 스승이 해설을 맡아 큰 부담 없이 연주를 마칠 수 있었다.

이 관장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조 관장의 권유로 가곡에 입문해 20년 만인 2002년 가곡 첫 번째 이수자가 됐다.



◆가시밭길 국악인생 동반자

조 관장은 이 관장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그의 첫 번째 가곡 이수자이지만 정작 가곡을 계승 발전시키기보다는 민요, 사물놀이 등을 가르치면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곡을 해가지고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악기 쪽으로 방향을 돌렸죠.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민요도 가르쳐야 했죠.”

조 관장은 제자와 함께 어렵게 지나온 날을 회상하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 관장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너는 나의 안 좋은 점만 닮았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걱정했습니다. 가시밭길 국악인생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죠. 어릴 때부터 걸어온 길을 보면 아주 비슷해 스승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이 관장은 학업을 마치고 가곡을 놓았던 적이 있었다. 레슨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 민요, 사물놀이 등 대중적인 국악레슨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가곡을 연주하지 못해 선생님께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타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 속이 상할 때도 많지만 우리 전통 국악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일념으로 스스로 위안을 갖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두 사제간은 마산 가야국악회관에서 교사 등을 가르치면서 활동했고, 2008년 세종국악회관으로 이름을 바꿔 이 관장이 맡고 있다.

그들은 국악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다는 것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국악회관 공간이 꽤 넓은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지 않느냐’는 주변의 권고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돈을 벌겠다고 국악에 전념하는 게 아닌데,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우리 전통 국악을 계승 발전시키는 게 우리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관장은 2001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됐으며, 2006년 마산에 가곡의 전승 및 보전을 위해 건립된 가곡전수관 관장을 맡아 가곡의 전승 보전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 관장은 “중요무형문화재 보호 육성하는 정부의 정책을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 제대로 된 지원이 필요하다”며 그동안 가곡전수관을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을 털어놨다.

그는 “선진국은 문화를 갑으로 대우하는데, 우리는 을도 아니고 병으로 취급당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다”며 “제자들은 이런 대우를 받지 않아야 할텐데…”라며 속상해했다.



◆제자들이 행복했으면

“경원이가 열심히 준비해서 내 나이 때쯤 되면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알려지고 더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조 관장은 제자의 앞날을 애정 어린 목소리로 염려했다. 생계를 걱정하기보다 아름다운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음악을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재미있고 행복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예술만 바라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조 관장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는 “경원이가 현재 힘든 것만 생각지 말고 1년, 5년, 10년 후를 내다보고 편안하고 아름답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자질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게 마음 아프지만 하루에 1시간이라도 땀이 바짝 나도록 노래를 불러 가곡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 관장은 스승의 당당하고 올곧은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신도 스승의 색깔을 닮을 수 있을까 늘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선생님은 지방에 내려와 문화재 보유자도 늦게 됐지만 자신의 갈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며 “과연 내가 선생님 나이 때 선생님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회의적이지만, 저의 제자라도 행복해지는 날이 꼭 올 거라고 생각한다”며 제자들을 걱정했다.

이 관장은 “선생님에게 강의법 등을 많이 배워 저도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그런 제자들이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좋고 에너지가 넘쳐 그런 데서 힘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꿈을 나누며

“우리 음악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서양음악 교육을 해야 하는데, 미국의 역사를 배우고 우리 역사를 못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죠. 뒤바뀐 것입니다.”

조 관장은 우리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서양음악을 예로 들어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됐다고 성토한다.

그러면서 국악이 한 줌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시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것과 낯익음이 서로 마주치고 그게 차이가 나면 안 되는데, 현재의 국악은 낯섦으로 다가오고 있어 이것을 낯익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이런 점을 해소하기 위해 인내를 가지고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국악인들이 열심히 책을 읽고 연구해 깊이 있게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관장은 또 “이런 난국의 원인은 소통부재에 있으며 소통의 방법은 조상들이 내려준 데서 찾아볼 수 있고, 그것은 올바른 소리, 곧은 소리로 그게 철학이다”며 “우리 전통 음악 속에 그런 사상이 많이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통문화를 가지고 더욱더 열심히 해보자라고 항상 다짐하고 있다. 가곡전수관에 체험활동을 오는 유치원생부터 일반인들까지 공연 등을 통해 국악을 전수하고 토요풍류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키우는 데 더욱 힘쓸 생각이다.

옆에서 스승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듣고 있던 이 관장은 “선생님 말씀이 저의 꿈이다. 피아노, 바이올린은 많이 배우지만 우리 악기는 그렇지 못하다”며 “머지않은 때에 피아노, 바이올린보다 우리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학교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적 있는 음악교육, 우리나라의 정신이 담겨 있는 음악을 학생들의 가슴에 쏙 뿌려주는 게 저의 과제이자 계획이다”며 “대중적인 국악교육 보급에도 역할을 하고 노력을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 관장은 대화 말미에도 제자에게 큰 힘을 줬다.

“경원아,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 그게 이뤄지더라. 가곡전수관도 그렇다.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대의와 공익을 위해 열심히 하면 원하는 게 이뤄진단다. 네 대에서 이룬다고 생각해라. 너의 제자에게 미루지 말고.”

그리고 다시 한 번 제자의 정진을 당부했다.

“선생님 소원은 청출어람이다. 나보다 뛰어난 제자가 되어야 한다. 꼭 이뤄질 거라고 생각한다. 제자들은 다 박사니까.”


▲조순자= 1944년 서울 출생. 전 국립국악원 연구원.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한국전통무형문화재진흥재단 이사. 가곡전수관 관장.

▲이경원= 1966년 마산 출생. 경북대 국악과 졸업. 용인대 대학원 국악과 졸업. 경남대·창원문성대학 강사. 세종국악회관 관장.

 

 

 

글= 이종훈 기자 leejh@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